김무성 해프닝의 뒤끝
김무성 해프닝의 뒤끝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10.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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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왕은 애완동물인 코끼리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코끼리가 천방지축으로 왕국을 돌아다니며 논밭을 짓밟고 사람을 해치기도 했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성격이 난폭한 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왕의 측근인 수도승을 찾아가 “코끼리를 우리에 가둬달라고 왕에게 아뢰달라”고 간청했다. 수도승의 얘기를 내내 불쾌한 표정으로 듣고 난 왕은 화가 잔뜩난 목소리로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수도승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 “코끼리가 암컷을 맞아 가정을 꾸리면 안정을 찾을 것이고 백성들의 피해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이후 코끼리가 두마리나 설쳐대면서 백성들의 피해도 두배로 늘어났다. 아랍에 전해진다는 민담이다.

중국 춘추시대를 지배했던 5패(覇) 중 한명인 초나라 장왕(壯王)은 즉위 후 주색으로 날을 보냈다. 자신의 탈선을 간언하는 신하들은 불경죄를 물어 감옥으로 보냈다. 장왕은 자신을 질책했던 신하들로 감옥이 대충 채워지자 일탈을 중단하고 정사에 나섰다. 감옥에 들어갔던 신하들이 요직에 중용돼 왕의 선정을 보필했음은 물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른바 ‘상하이 발언’으로 진땀을 뺐다. 중국 방문 중에 기자들과 만나 “정기국회 후 개헌논의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통치를 분담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정부제를 자신의 견해로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 등 현안 추진에 장애가 될 것이라며 개헌론에 제동을 건지 불과 열흘만이었다. 그의 항명성 발언은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대표로 당선된 후 ‘당과 청와대의 수평적 관계’를 누차 강조해온 그가 마침내 칼을 빼든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일전을 불사할 것 같았던 그의 결기는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께서 아셈회의에 참석하고 계신데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귀국해서는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당에서는 개헌논의가 일절 없어야 한다”며 물러난데 이어 “내년에도 개헌논의를 주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서약에 가까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거대 여당의 대표이자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힌다. 외국에 나가 불쑥 개헌을 언급했다가 혼비백산해 되물리는 경박한 언행에서 그런 무게감은 보이지 않는다. 실언을 자인하고 앞으로 개헌과 관련해 입을 닫기로 하면서 실없는 사람이 돼버렸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물밑에 가라앉았던 개헌 논란을 되살리고 그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승자독식주의에 기반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권력구조로 바꿔 갈등과 대립의 정치구도를 타파하자는 것이 개헌의 1차적 취지일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의 행보에 집권당의 대표조차도 소신발언을 하기 어려운 권위적 정치 시스템을 고스란히 투사해냄으로써 분권형 개헌의 당위성을 설파한 셈이 됐다. 청와대의 불편한 반응을 감지하자마자 바로 말을 바꾼 그가 분권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야 의원의 절대다수가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 적기를 이번 정권의 말기로 보는만큼 개헌논의가 청와대 통제로 잠복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그에 앞서 정치권이 자문하고 숙고해야 할 대목은 과연 대통령제의 폐해가 시스템만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아랍 왕국과 초나라의 사례가 시사하듯 대통령제가 아니라 1인 천하의 왕조체제에서도 리더와 참모가 역할을 하면 얼마든지 ‘국리민복’을 창출할 수 있다. 증세(增稅)를 ‘증세’라고 부르지 못하는 정치문화에서는 분권형 권력도 변질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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