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거울
어머니의 손거울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10.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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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계절 탓인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친정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 옛날 어머니의 솜씨인 매운 고춧가루를 섞어 버무린 깻잎김치라면 내 입맛을 되돌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얼른 깻잎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몇 잎씩 묶어 작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쟁여 넣고 돌멩이로 꼭꼭 눌러 놓았다. 푸른 잎이 누렇게 변해 곰삭을 때까지 기다리는 행복은 아마도 어머니의 마음과 같으리라.

지난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늘 바쁘셨다. 연로하신 할머니와 식솔들 치다꺼리에 잠시 허리펴고 쉴 틈이 없으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화장하는 모습은커녕 거울 한 번 쳐다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셨다. 바삐 돌아가던 어머니의 세상은 정지된 채 세월을 가로막았다. 오십에 찾아온 병마는 어머니를 방안에 홀로 가두고 젊은 날의 모습과 함께 삶까지도 일그러트렸다.

가끔 어머니는 거울을 보면서 한탄을 하시곤 했다.

“이리 살문 뭐 하누 얼른 가야지”

어머니의 일상은 창문으로 손바닥만한 하늘을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내 집에 찾아오셨다. 절뚝거려 넘어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지팡이에 의지하고 운동화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얼굴에 하얗게 피어오른 분가루와 빨간 입술연지!

그때 나는 맨발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엄마 울엄마 맞아? 너무 예뻐요”

“그려 거울보고 그냥 해 본 겨”

겸연쩍게 웃고 계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렇게 소란을 떨 수밖에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 휘청거리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왜 그리 애잔하게 다가왔는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날 어머니 얼굴은 화장을 한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덧칠한 거였다.

끼니를 들고 가라는 내 부탁에도 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는 어머니께 차비를 넣어드렸지만 어머니는 떠나는 택시의 창문 틈으로 던져버렸다. 그것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싶은 여인이었다. 일그러진 당신의 모습에 익숙해져 무심히 거울에 비춰보는 줄로만 알았었다. 어머니는 긴 투병생활 동안 지치고 힘들 때 거울 앞에서 곱게 꾸미고 나들이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어머니께서 손거울을 꺼내보며 탄식하던 그 말에 나는 귀가 어두웠다. 어머니는 간절하게 자식을 향해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내 집에 다녀간 것도 어쩌면 당신이 먼저 떠날 채비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거울 속에 당신의 속내를 꼭꼭 감추고선 삶의 고통, 슬픔, 외로움들을 깻잎김치처럼 매운 아픔으로 가슴 속에 차곡차곡 쟁여 넣고는 세월의 깊이만큼 곰삭고 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나던 날, 가방 속에는 손거울이 들어있었다. 지금도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 일그러진 어머니 얼굴이 보일 것만 같아 난 손거울을 차마 꺼내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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