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줄 알아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10.1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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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일상의 삶에서 아름다움과 함께 감동적인 것들과의 만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그래왔듯이 단잠에서 깨어나 눈부시게 빛나는 새아침을 맞이하는 기적을 고마워해야 된다.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하는 하늘의 축복이다. 오늘의 시작에서 세안(洗眼)후 거울을 본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마치 일상화의 관행인양 적지 않은 분야에 걸쳐 묵인되고 있다. 암세포처럼 번져가는 이러한 행태가 수수방관된다면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 모두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병폐로 귀착된다. 이거야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하루빨리 뿌리 뽑아야 할 적폐(積弊)다.

최근에 전직 고위공직자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부도덕한 추태를 어쩌다가 저지른 실수로 여기고 치졸한 변명으로 치부하는 작태가 많은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도덕적·법적 처벌 없이 흐지부지 되어가는 현실이다. 도덕 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그러진 부도덕한 행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법자의 솜방망이 처벌 등 국민들의 법 감정과 정서에 역행하는 비정상적인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고 있다.

권력과 금력을 탐하는 일부(?) 지도층 및 공직자의 비리, 부정, 편법, 유착, 복지부동, 나태 등 망국적인 부패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특히 정치권의 경우 여(與)든 야(野)든 국가의 안위, 국민의 안전 및 행복한 삶을 등한시하는 비생산적인 정쟁을 멈춰야 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만으로도 울분(鬱憤)을 토할 일인데 보수, 진보, 좌파, 우파, 우리 편, 남의 편, 이념적 편향적 충돌 등 상대방에 대한 무한 증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라가 둘로 쪼개진 듯하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우리나라는 5000여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예절바르고 우수한 민족이 사는 아름답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다. ‘Land of the morning calm’ 민족도 하나이고 언어도 하나다.

다양한 문화가 있는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독립국이다.

매년 대학입시가 가깝게 다가오면 진학문제로 당사자 또는 학부모의 상담에 응한다.

“어느 과(課)로 진학하는 것이 장래가 있습니까?” 상담자의 질문이다.

“건축과가 좋습니다.” 왜? 건축과로의 진학이 장래성이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높은 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 보십시오. 인구의 과도집중이 초래한 도시과밀화, 교통의 혼잡, 불량주택지구의 증대, 인간소외 등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도시의 형태적 혼잡과 무질서가 곳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시건설은 도시민에게 쾌적함을 주기위해 형성되었기 보다는 보수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에 기인하여 친밀감 있는 도시개념이 무시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새로운 도시의 상(urban image)은 인간의 질서를 회복시키고 인간의 미감(美感)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개별존재가 상호작용하는 아름다운 건축과 어울리는 도시화 개념이 거시적 차원에서 해석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여야 됩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습니다.”

“신나게 할 일이 많아집니다.”

“건축과로의 진학이 장래가 밝습니다.”

30여년간 도시 및 건축을 전공한 전문인으로서 건축가(architect)라고 자임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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