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밤
어느 가을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10.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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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들은 가을에 유독 외로움을 타기 쉽다. 그래서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다. 홀로 먼 타향을 떠돌다가 가을을 맞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맑고 아름다운 가을 풍광을 함께 하지 못하는 서글픔과 쌀쌀해진 날씨와 지는 낙엽이 주는 쓸쓸함이 합쳐져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가을날에 객지에서 가까운 친구들을, 그것도 뜻하지 않게 우연히 만난다면 그 반가움이 어떻겠는가? 당(唐)의 시인 대숙륜(戴叔倫)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객사에서 친구들과 우연히 모이다(江鄕故人偶集客舍)

天秋月又滿,(천추월우만), 때는 가을, 달은 또 보름달
城闕夜千重.(성궐야천중), 성궐에 밤이 들어 밤은 천 겹이나 깊은데
還作江南會,(환작강남회), 강남 땅 모임 또 이루어지니
翻疑夢里逢.(번의몽리봉). 도리어 꿈속의 만남이 아닌가 의심하네 
風枝驚暗鵲,(풍지경암작), 밤 까마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놀라고
露草覆寒蛩.(노초복한공). 이슬 맺힌 풀이 귀뚜라미를 덮었네
羈旅立猛醉,(기려장감취), 우리는 나그네 신세, 오래도록 한껏 취해보세
相留畏曉鐘.(상류외효종). 서로 붙들어 두려 하건만 새벽 종소리 두렵다네.


※ 철은 벌써 가을이고, 달은 또 가득 차서 보름이다. 그리고 성궐에 밤은 깊을대로 깊었다. 가을과 보름달, 여기에 성궐 안이라서 마치 성곽처럼 첩첩이 쌓인 밤, 하나같이 시인의 외로움을 촉발시키는 기제들이다. 

시인은 오랜 시간 가족과 고향을 떠나 홀로 타지를 떠돌다가 객지에서 가을을 맞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가을이 되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보름달과 깊은 밤까지 어우러지자 시인의 외로움과 그리움은 극에 달한다. 이러던 차에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사전에 어떠한 기별도 없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타향인 강남 땅에서 한 데 모이게 된 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에 지쳐 있던 시인에게 이보다 반가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 데다가 갑작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시인은 이 만남이 꿈속의 일이 아닌지 도리어 의심할 정도였다. 그래서 시인은 이 기쁜 밤의 시간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밤의 정경들이 예민하게 포착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밤 까마귀가 놀라는 모습이나 이슬 머금은 풀이 귀뚜라미를 덮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밤을 새워서 잠을 잊은 채 이런저런 밀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사실은 시인의 외로움의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시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날이 새는 것을 알리는 새벽 종소리이다. 날이 새면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고 다시 외로움과 그리움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 타향을 떠도는 사람 치고 가을을 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름달이 뜬 가을 밤 외로움에 사무쳐 있을 때 뜻하지 않게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밤은 뜬눈으로 지새우며 가을 밤의 정경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우정에 취해 보는 것도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을 외로움은 기꺼이 한 번 타 봄직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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