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넝쿨
담쟁이넝쿨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10.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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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원남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작품전시회와 회원작품 발표회가 원남 테마공원에서 열리는 날이다. 야생화 회원전, 기타, 요가, 섹스폰 동우회, 스포츠댄스, 풍물교실, 서예교실, 산악회와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즐거움을 주고 면민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먼저 같이 간 지인들과 원남지가 내려다보이는 관모봉 산행을 했다. 관모봉의 유래를 보면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관료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를 닮았다 하여 관모봉이라 불렸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원남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 관모봉 자락에는 장관, 검사, 도지사, 면장과 같은 많은 관료들이 배출되었다. 관모봉을 오르며 갈참나무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드문드문 떨어진 도토리를 줍기도 했다. 올라가다 힘이 들면 되돌아 내려오리라고 마음먹고 천천히 올라갔다. 

그 틈에 쉬어가는 사람들, 정상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수건을 주지 말고 지팡이를 내주지” 하며 되돌아 내려오는 노인의 목소리가 벌써 숨이 찼다. 수십 년을 농촌에서 들과 산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었어도 그리 쉽지 않은 산행인가보다. 한 발짝 한 발짝 점점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거의 다 올랐는지 관모봉 정상, 관모봉 전망대란 이정표가 보이고 갈림길이 나 있었다. 관모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줄이 쳐져 있어서 잠시 멈췄다. 

또 초행길이다 보니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득하였다. 잠시 쉬면서 정했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관모봉 정상은 꼭 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산악인들에게는 단숨에 오를 산이겠지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대단히 큰일을 해냈다고 칭찬을 하면서 그저 무엇이 되었거나 정상을 향해 무작정 타고 오르는 담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위나 나무에 붙어 자라는 담쟁이는 어린줄기를 심어도 두해정도만 자라면 담장 전체를 덮어 버리는 식물이다. 요즘 우리 집 담벼락에 그려진 자연이 주는 위대한 벽화에 감탄사가 절로난다. 

담쟁이는 여름내 푸름으로 온 담벼락을 점령하더니 환상의 단풍으로 눈이 호사를 한다. 담쟁이 넝쿨은 정상에 도달했음에도 다시 옆 공간으로 뻗어나갔다. 빈 공간을 내버려두지 않고 내뻗는다. 담 끝에 가서는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는 넝쿨은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이제서 막 올라가는 담쟁이는 위로 보며 힘겹게 올라가는 듯 했다. 정상에 먼저 올라가 성취감을 맞보고 있는 담쟁이가 얼마나 부러울까. 

먼저 오르려고 옆 줄기를 마구 누르며 크지 못하게 하고 자신만 먼저 정상에 올라 내리막길을 모르는 담쟁이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서서히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인간미가 느껴진다. 설령 정상에 다다르지 못하여도 훨씬 멋지지 아니한가. 반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 도우며 같이 올라가는 담쟁이도 눈에 띄었다.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산행이지만 굳이 정상을 가야 하는 일일까. 정상까지 가려면 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줄을 쳐 놓았다는 것을 알고 점심시간에 맞춰 전망대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준 진행요원의 말을 따랐다. 정상을 좋아하는 담쟁이 삶을 보며 많을 것을 배우고 있다. 

정상에 서는 것은 멋지지만 정상에 서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이가 더욱 멋지다는 것을.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상의 활력이 느껴지는 분들과 함께하며 우리 먹을거리를 위해 애쓰는 아름다운 손길이 있는 곳, 더러는 어깨동무하며 손잡고 같이 뻗어나가는 담쟁이 넝쿨처럼 오늘행사가 무척 아름다워 보이는 정상인 하루다. 내려올 때 더 아름다운 관모봉 자락의 풍경이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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