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섬 ‘그래도’
희망의 섬 ‘그래도’
  • 조원오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4.10.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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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조원오 <원불교 충북교구장>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은 장수로서의 의연(毅然)함과 희망을 담고 있다.

여기서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다. 막중한 책임감속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12척의 배로 3백30척 왜군을 물리친 명량해전은 우리 역사의 큰 교훈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권력으로 빼앗을 수도 없다. 건강과 행복은 그 뿌리가 하나이다. 행복은 건강이라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힐링 멘토인 마가스님은 행복을 ‘그래도’에서 찾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제주도 보다 아름다운 섬이 어딘 줄 아세요? ‘그래도’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있는 게 어딥니까? ‘그래도’에 자주 갈수록 행복해집니다.”라고 말한다.

어렵고 힘들 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래도’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과 불행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한 생각을 잘 돌리고 못 돌리는데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진다.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이 없다. 열을 가져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을 가져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원불교 교조(敎祖) 소태산 대종사님은 제자들에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말씀하시기를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니 살도음(殺盜淫)을 행한 악인이라도 마음만 한번 돌리면 불보살이 될 수도 있지마는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능력이 없나니라.”하시고 “그러므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에게 큰 희망을 열어주실 원력(願力)을 세우시고 세세생생 끊임없이 노력하시나니라.” (대종경 요훈품 12장)고 하셨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살아 있으되 마음은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죽은 나뭇가지는 봄이 와도 잎과 꽃을 피울 수 없다.

불보살 성현들이 이 땅에 오신 까닭은 중생들에게 희망을 열어주시기 위함이다. 중생이 도탄(塗炭)에 빠져 신음하는 말세(末世)가 되면 불보살 성현들이 주세불로 이 땅에 오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위와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겼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고 하셨다. 부처님은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행복의 섬, 희망의 섬, ‘그래도’에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좋은 의사와 같아서 병에 따라 약을 주나니,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我如良醫 知病設藥 服與不服 非醫咎也)”고 하셨다.

그렇다.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고 가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면 가고 안가는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우리들에게 희망을 말씀하셨다.

“희망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가. 우리가 희망하는 목표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나가자.”고 강조하셨다. 희망의 섬, 행복의 섬, ‘그래도’에 함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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