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에 우울을 말리다
가을빛에 우울을 말리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10.0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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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마음을 데리고 뜰에 내려서서 햇살을 쐽니다. 가을빛이 가시처럼 살갗을 찌르는데 햇살에 찔리는 살갗이 피가 말라 쪼그라드는 느낌입니다. 지금이야 황홀하고 감사한 가을 햇살이지만 아득한 청춘시절 지독한 우울감을 가을빛에 말리며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해의 수확을 위하여 말라가는 가을 들녘에서 새벽이슬이 걷히기 전 일을 시작해 저녁이슬이 내리기 전까지 일을 했습니다. 미소로 기꺼이 일을 하면서도 우울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날은 일을 접고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들녘을 달렸습니다. 그렇게 들녘의 끝끝까지 길을 달리면 머릿결을 날리는 바람과 폐를 휘젓는 서늘한 바람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실감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시의 상실감은 청춘의 격정이었습니다. 풍성함 속에서 나만의 아픔이 있었다면 시골이란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청춘으로서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설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격정이었습니다. 벌써 40년이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당시 내가 뿌린 그 들녘의 눈물들 때문에 나는 이후에도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울함을 겪습니다. 우울함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 또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생명이 아닐 것입니다. 내게 있어 우울이란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만 같아서 지금도 여전히 일이 너무 많거나 노력한 만큼의 효과가 적다고 느낄 때 번거로운 손님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젊은 청춘 한때도 그랬거니와 온전히 나 자신 때문에 겪게 되는, 감기처럼 으스스 찾아오는 우울감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문을 닫아걸게 만듭니다. 내 몸과 다름없는 아이가 오래 아팠을 때, 나와 하나라고 믿었던 남편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행하여 배신감을 느꼈을 때, 일생의 반전을 꽤한다고 준비한 사업이 건강을 해치며 나를 주저앉힐 때 나는 끝없이 우울 속으로 추락했습니다. 누군가 사정없이 문을 두드려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으로 걸어 잠근 문은 절대로 열수 없는 무서운 우울. 남편은 이런 나를 데리고 무작정 아프리카로 배낭여행을 떠났으니 가난하고 힘든 여행의 수고로움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 고된 여행이 반복되면서 나의 우울감은 씻은 듯 사라졌는데. 아마도 생각이 괴일 틈이 없고 발걸음이 멈출 시간이 없으니 붙들리지 않은 우울감이 스스로 달아났으리란 생각입니다. 

사람은 무려 하루에 17000번의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한두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당연히 병이 되는 것. 인생은 길고 생각은 아주 잠깐 스쳐 보내야 하니 요즘은 사람이나 일이나 생각에 붙들어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하는 이야기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으려하니, 그는 나를 빗대어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엇이건 잘 쌓아두거나 감추지 못하는 나의 성정 때문에 또는 나의 직설적인 감정표현으로 우울하게 일그러진 기억의 조각들을 펼쳐 이런 가을빛에 말려 봅니다.  

취직공부를 위해 독서실에 갇힌 청춘들, 일없이 PC에 빠진 청춘들, 햇살을 모르는 밤일에 묶인 청춘들에게 가을빛이 주는 황홀한 상실감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오토바이가 아니라면 자전거라도 타고, 자전거가 아니라면 걸어서라도 이 풍성한 햇살가시에 찔려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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