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위에서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10.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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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길을 나선지 7일째입니다. 계획보다 훨씬 못 미친 곳에 와있습니다. 하루에 20킬로미터씩 걸을 계획을 세웠는데, 30킬로그램의 배낭을 캐리어에 매달아 끌고 10여 킬로그램의 배낭을 등에 지고 걷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는 걷는 일에 많이 익숙해 졌고 조금씩 자신감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걷기 첫날, 첫발을 내 딛었을 때는 마치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공허함과 외로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세상에 처음 나올 때의 심정도 이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낭을 끌고 지고 길을 걷는 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도 민망했습니다. ‘왜 걷는 거지?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걷는 길을 잃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왕복 4차선 국도에서 혼비백산되어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배가 고픈데도 사람이 많은 음식점을 들어가지 못해서 애꿎은 물만 마시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두어 시간을 걸어 공주에 들어갔던 첫날의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이렇게 혼자 길을 떠난 건 아마 두 번째인 것 같습니다. 25년 전쯤 방송국에서 노조위원장을 하던 시절에 무언가의 결심을 위해 혼자서 일주일 정도를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그때는 차를 운전하고 다녔고, 지금은 걷는 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채우기 위해 고심한 발길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에 가득한 삶의 무게를 비워내기 위한 여정이란 점입니다. 그런데도 끌고 지고 가는 배낭의 무게가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이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짐을 꾸려도 될 일이었는데 아직도 내가 품고 있는 욕망의 무게만큼이나 버리지 못할 것들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이 여행을 마칠 때쯤이 되면 내 몸과 마음은 얼마나 가벼워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걸을 때 많이 보이는 것은 사마귀였습니다. 숲이 있거나 풀이 무성한 길가에는 인도와 차도의 갓길에 사마귀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질주하는 차의 바퀴나 무심히 걷는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무참히 죽음으로 변한 모습입니다. ‘왜 사마귀는 길가로 나올까?’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를 떠올리며 씁쓸해 하다가 문득 나의 삶도 저 사마귀와 같은 무모함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마구 버려진 쓰레기입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쭉 뻗어 깨끗하게만 보이던 도로의 갓길은 쓰레기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지방도로나 차가 많이 달리는 넓은 도로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가 많이 달리는 넓은 도로일수록 쓰레기는 더욱 많았습니다. 평소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임을 감안하면 모두가 차에서 던진 쓰레기들입니다. 너무 오래 되서 쓰레기가 길가에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데도 어느 누구도 치우려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누가 그 길을 걸으면서 청소 상태를 점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남이 보지 않는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국민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방치해두는 행정당국을 보면서 선진국을 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우리의 삶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느라 진정으로 살피고 돌봐야 할 그 어떤 소중한 것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가을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바람은 맑아 걷기에 딱 좋은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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