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떠나가는 배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10.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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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요즘 정태춘이 작사 작곡한 노래 ‘떠나가는 배’를 자주 읊조린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그렇다. 배는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뱃고동 소리 힘차게 울리며 부두를 떠나는 배. 그 배가 피안의 땅에 당도할 때까지 순풍에 돛단 듯이 미끄러져 간다면 어찌 아니 좋으랴.

허나 어디 뱃길이 그리 순탄하기만 하던가.

칠흑 같은 어둠은 물론 거친 풍랑과 수많은 암초와 빙산을 헤치고 가야 한다. 하물며 눈비쯤이야.

그러나 아무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길일을 택해 출항한다 해도, 망망대해는 워낙 변수가 많아 종잡을 수 없다.

때론 잘 나가던 배가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거나, 풍랑과 암초에 전복되고 침몰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승객은 물론 배에 실은 그들의 부푼 꿈과 희망마저도 바닷물에 가라앉고 마는.

이처럼 고난 없이, 위기 없이 가는 배란 없다. 그게 바로 배가 지닌 숙명이자 사명이며 존재가치다.

오늘도 항구마다 꿈과 사랑과 희망을 가득 실은 배가 쉼 없이 오고 간다.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선장의 지휘 아래 항해사 기관사 갑판원이라 불리는 승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각기 맡은바 직무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을 배안에 남겨두고 속옷차림으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구역질이 난다.

동시대를 사는 이 부끄러운 자화상 앞에 많은 국민들이 목 놓아 울었다.

자괴감이 하늘을 찔렀건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좌우로 갈리어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일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에 가고 싶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 살면 장땡인 저 이기적인 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약한 자를 짓밟고, 소외된 자를 외면하고, 권력과 금력에 아첨하고 아부하는 자가 떵떵거리고 사는, 이 더러운 포구를 떠나야 한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기어이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리라.

그 땅에서 저마다 기본을 지키고, 서로 돕는 사랑의 씨앗을 뿌려, 약자도 강자도 부자도 빈자도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안전하고 행복한 새 세상을 만들면 좋으리.

이제 너와 나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공동운명체란 과정과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함께 실행하는 유기체다. 잘하면 성공하면 함께 피안의 땅에 닿아 성취의 과실을 맛보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파산되거나 침몰해 비극적인 종말을 함께 맞음을 의미한다.

연못이 마르거나 더러워지면 그 속에 살던 물고기나 수생식물이 모두 폐사하듯, 배가 고장 나거나 침몰하면 승객도 선원도 화물도 모두 표류하거나 죽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터와 일터도 그러하다.

언제 횟감으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좁은 수족관 안에서 힘자랑하며 싸움질 하는 물고기처럼 그렇게 아둔하게 살지 말자.

보다 멀리 바라보고, 기본을 지키며,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자.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 어깨동무하고 가자. 저 평화의 땅, 저 무욕의 땅으로 함께 가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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