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
녹색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6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로 아닌 '길'
지난 9월 충북환경운동연합 부설기구인 환경교육센터 초록별에서 충북의 자연을 찾아가 체험하고 느껴보는 '청풍명월 생태탐방'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주제는 '길'이었다.

한반도의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은 많은 생물들에게 삶의 공간을 제공하지만 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서로간의 이동을 막는 자연장벽이었다. 백두대간으로 인해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생겼고, 이는 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물고기도 마찬가지였고, 특정한 지역에만 사는 물고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백두대간에 처음으로 길, 고개가 만들어진 것은 신라때 낙동강 유역에서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오늘날 충주 월악산 지역에 개척한 계립령이었다. 계립령은 고려시대에까지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로 역할을 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새롭게 계립령 아래쪽으로 새재가 만들어져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영남대로의 역할을 500여년간 수행하였다. 그 후 일제시대에 새재 아래쪽으로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는 이화령이 생겼고, 최근에는 고개 아래로 터널이 생겨 하루를 꼬박 걸려 걸어야 넘을 수 있었던 길들을 단 몇 분만에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길을 걷고, 차를 타고 넘기도 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과거로 갈수록 길속에 문화가 있고 현재로 올수록 길은 통과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문경에서 오르는 계립경 길에는 다양한 미륵부처가 자리잡고 있었고, 고개 너머에는 석굴사원으로 지어진 미륵리 절터가 있었다. 문경새재에는 여러 관문과 성터, 그리고 이 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백두대간에 있는 여러 고개중 새재만을 골라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그 시대의 이야기가 있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죽령은 대나무에 미끄러지듯 시험에 떨어질 것을 꺼려한 것이었다. 이화령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상의 휴게소였다.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휴게소에는 커피나 우동을 먹던 현대의 정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화령터널을 지나 백두대간을 넘었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터널 요금소였다.

길과 도로는 혼재되어 쓰이지만, 길위에서 본 의미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는데, 밀란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 길과 도로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도로는 일정한 공간에서 A와 B를 잇는 것으로 최대한 가까울수록 최선인 것이며, 도로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반하여, 길은 꼭 어디에서 어디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그 굽이굽이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길은 도로로 대체되었고, 우리의 이동은 빨라졌다. 그만큼 더 넓은 지역을 가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삶도 빨라졌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가졌던 길의 문화를 잃게 되었다.

청주시에서는 청주를 남북으로 가르는 무심천 동편 도로를 현재의 4차로에서 8차로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도로는 무심천쪽으로 교각을 설치하여 확장하는 형태가 된다. 이를 통해 교통문제와 함께 심각해지고 있는 도심에 쉽게 접근하게 함으로써 도심공동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도심공동화 문제는 복합적이지만 도심공간에 내가 찾아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가 있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듯 길이 도로로 대체될 때 우리는 문화를 잃어버린다. 넓은 도로는 그저 좀더 빨리 통과해야할 대상일 뿐,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이다. 거대한 토목공사로 지역 경제는 조금 살아날지 모르지만 도시의 중심을 8차선 도로가 자리잡고 있는 그 곳에 삶의 문화가 자리 잡을 곳은 없다. 더욱 황량한 도심만이 남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