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타령
국화타령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9.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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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여름의 뒷자락이 희미하다. 이미 가을은 당신 곁에 와 있노라며 바람이 선들 선들 속삭인다. 올해는 막내딸이 내 가을의 빗장을 열었다. 하늘이 높아지고 얼굴에 비벼대는 바람이 소슬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내 몸의 모든 감각기관은 가을맞이를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어찌된 일인지 그 속삭임은 나이를 먹을수록 간절하다.

나의 가을맞이는 가족들에게 국화타령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바람이 달라졌다고 하늘이 너무 청명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신호를 보낸다. 반응이 시큰둥하면 노골적인 심사를 드러내며 국화노래를 부른다. 이미 그 지경이면 나는 반포기 상태가 되어버려 내 타령은 두 딸에게 옮겨 간다. 올해도 그렇게 해서 막내딸이 노란국화 한 다발로 내 가을의 빗장을 열어주었다.

오지 약탕관을 꺼내 놓았다. 몇 해 전 지인의 집에 놀러가서 얻어온 나이배기 물건이다. 몸에 금이 가서 사용불가 판정을 받고 마당구석에 방치된 채로 있었다. 그늘진 구석에 반쯤 흙속 묻혀 있는 것이 안쓰러워 지인의 허락을 받아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오랜 세월 쓰디쓴 온갖 약재를 품고 뜨거운 불에 온몸을 헌신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약물을 우려내어 주인에게 공양했을 것이다. 약탕관을 품에 안고 오면서 우리 집에서는 그동안의 노고를 대접해주리라 맘먹었다. 그러나 그 대접이란 것이 별것도 아니다.

가을이면 국화 한 다발을 안기는 것이요. 시시때때로 약탕관이 아닌 화병으로 제 몫을 하게 하는 일이다. 가끔 뿌리 내릴 식물이 있으면 그 품을 신세 지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릴 때보다 실하고 빠르게 내린다. 본래 제 본분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을 주는 존재임을 몸으로 확인시켜주는 듯해서 경이롭다.

국화다발을 약탕관에 꽂는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으로 가을맞이 채비를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나는 온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 바람이 전하는 속살거림을 들을 것이다. 바람은 내게 새 생명을 잉태한 열매들을 갈무리하고 있을 들녘의 풍경을 전해 줄 것이고, 고향 뒷동산에는 도토리열매들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고 있다고 발길을 재촉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몽우리 앙증맞은 들국화는 계절을 품은 향기로 밭 언덕에서 한들거리고 있다고 속삭일 것이다.

이쯤 되면 내 마음은 문밖을 나서 고향 숲속에 서있다. 그렇다고 도토리를 주워 모을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요. 국화를 한 아름 꺾어 집을 국화향기로 채우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계절 내내 생명을 잉태한 나무들이 경이로워 바라보고 싶어질 뿐이다. 도토리열매를 떨구어낸 껍질들을 한 움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이제는 편하게 대지의 품에서 쉬라고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국화향기로 후각을 자극한다. 약탕관을 바라보니 오랜 세월 제소임을 다해서 여한이 없다는 듯 국화를 품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쩐지 제 할일 다하고 대지의 품에 안긴 도토리 껍질과 닮은 듯해서 애잔하다.

어쩌면 해마다 반복되는 나의 국화타령은 생명을 잉태하고 갈무리하는 계절, 가을에 대한 경배이며 헌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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