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시어머니
엄마와 시어머니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9.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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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한 여름 그 뜨거운 바람 속 어디에 시원한 바람이 숨어 있었던가. 어느새 구월바람이 서늘하다. 얇지만 긴 옷을 찾게 된다. 어찌 계절만 빠르다 하랴. 나도 벌써 딸에서 아내, 아내에서 엄마, 엄마에서 시어미까지 왔다. 딸일 때 아니 엄마가 되고도 내가 시어미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한 여름에 가을바람을 생각 못하듯.

나는 며 칠 전 아들을 결혼시키며 시어미가 되었다. 아들의 아내 어찌 귀하지 않으랴.

그런데 가까이 가려하면 부담스럽다하고 멀리 있으려 하면 서운타하고 내가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하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하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삼십 여년을 살았으니 하루아침에 적응된다는 것이 더 이상할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 것을 내가 너무 성급 했던 것이다.

나도 내 시어머니와 편해지기까지 이십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편안하게 하려 해도 늘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한번은 주말 아침에 남편과 주방에서 이야기하면서 마늘을 깠다. 어머니께서 나오시더니 아범한테 마늘까라고 시키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나도 모르게 큰돈을 대출해서 썼는지 은행에서 독촉장이 날라 왔다. 나는 속이 많이 상해있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어머니께 속상하다고 했더니 어차피 다 쓴 걸 이제와 따지면 뭐하냐고 아무 말 말라는 것이다. 그때 서운함이 극을 향했다.

이제는 당연히 내편이 되어 주실 줄 알았는데 역시 어머니는 남편의 엄마였다.

엄마와 시어머님, 엄마는 편안하고, 따스하고, 부드럽고, 너그럽고, 늘 함께 있고 싶고. 반면 시어머님은 불편하고, 엄격하고, 조심스럽다. 무한과 유한, 철저하게 다른 두 마음이 한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하는 잔소리는 애정과 관심이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하는 참견과 잔소리는 며느리에게 상처다. 살다보면 좋은 말도 하고 서로 언짢은 말도 하게 된다. 며느리는 아무리 잘해도 며느리 일 수밖에 없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나는 부정 했었다. 그러나 나 역시 별수 없는 이 땅의 엄마, 시어미다.

시어머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 며느리는 내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 어느 누구보다 귀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한 남자를 가운데 놓고 아들이라 하고 남편이라고 서로 당기는 꼴이다. 거기서 갈등과 불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본래부터 엄마로 시어머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여자가 가는 길 그 길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자식을 가진 여자들에게 붙여진 숙명의 이름 엄마. 아들이 결혼하면 비로소 불리는 시어머니.

나는 지금까지 엄마로 30년을 살았다. 엄마노릇은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 이제 시작하는 시어미 노릇은 그래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며느리로 살았던 세월은 잊어버리고 나도 몰랐던 시어미기질이 비질비질 나온다.

안주인이 현명해야 집안이 화목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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