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슬픈 흥부들에게
이 땅의 슬픈 흥부들에게
  •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09.24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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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흥부가 좋으냐, 놀부가 좋으냐’고 지나가는 여인에게 물었다.

그래도 흥부가 좋다는 여인이 한 두 명은 있었다.

‘흥부와 결혼할래, 놀부와 결혼할러라고 다시 물었다.

안타깝게도 흥부와 결혼하겠다는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유는 무능해서, 가난해서, 자식을 많이 낳아서였다.

현대사회에서 무능과 가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탓이다. 사람을 얼마나 왜소하게 만들고, 삶을 얼마나 피폐케 하는지를.

하여 그런 연유로 흥부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인들을 원망하지 않겠다.

딸이 없지만 나 또한 그런 무능하고 가난한 사윗감을 데려오면 배척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자식을 많이 낳아서 싫다는 건 좀 그렇다.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것은 남성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도 있건만, 여성들의 출산기피증이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반증이니 참으로 입맛이 쓰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전래설화 흥부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충청 ·전라 ·경상도 접경에 살던 연생원이 놀부와 흥부 두 형제를 두고 죽자, 형인 놀부가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인 흥부를 내쫓았다.

쫓겨난 흥부는 아내와 여러 자식을 거느리고 움집에서 헐벗고 굶주린 채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했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부는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새끼제비를 주워다가 정성껏 돌보았고, 흥부 덕에 재활해 남쪽으로 날아간 제비가 이듬해에 다시 와 흥부에게 박 씨 한 개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는 그 박 씨를 땅에 심었고, 자라서 가을에 여문 박을 켜게 되었다.

뜻밖에도 켜는 박마다 온갖 눈부신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흥부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것을 안 놀부가 자기도 새끼제비 한 마리를 잡아다가 다리를 부러뜨린 뒤 실로 동여매어 날려 보낸다. 그 제비도 이듬해 봄에 박 씨를 물어다가 놀부에게 주었다.

그러나 놀부가 심어서 거둔 박 속에서는 온갖 괴물이 나타나 그의 재산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없어지고, 패가망신 했다.

마음씨 고운 흥부는 주걱으로 뺨까지 때리며 핍박했던 놀부 부부를 거두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이처럼 흥부전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받은 박 씨를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흥부의 행운에 심통이 난 놀부는 흥부와 똑같이 하다가 결국에는 ‘쪽박’을 차는데, 이러한 권선징악적 뒤집기를 통해 설화는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준다.

흥부는 가난하지만 선량한 인물, 생활능력이 없으면서도 자식만 10여 명이나 낳은 순수하고 정적인 인물이다.

반면 놀부는 흥부와 대조적인 악한 인물, 사회적 관습이나 법을 무시하며 부의 축적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무리하게 자본축적을 기도하지만, 규모 있고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며, 개과천선하여 선한인물로 변화되는 동적인 인물이다.

아무튼 현대인들은 고생 끝에 대박이 나는 흥부보다, 훗날 쪽박을 찰지언정 지금 당장 떵떵거리며 사는 놀부를 더 선호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영화보다, 눈에 보이는 현재적 안락에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착한 흥부들은 고단하고 슬프다.

오늘도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다리 부러진 새끼제비까지 정성껏 보살피는 착한 흥부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그런 흥부들이 있기에 사회가 유지되고 지탱된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고, 학벌과 스펙이 보잘 것 없다고, 특별한 재주가 없다고 괄시받고 무시당하는 이 땅의 착한 흥부들이여!

세상이 그대를 홀대하더라도, 삶이 몹시 고단하더라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마라. 고진감래하니, 그대도 어느 날 흥부처럼 대박을 낸다.



/편집위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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