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와 백비
무자비와 백비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14.09.24 18: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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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비석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이름 및 행적을 나타내거나 어떤 사적(史蹟)이나 업적 또는 사실(事實)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돌에 글을 새겨서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다양한 형태의 비석들 가운데 특이하게도 큰 바위에 한쪽 면을 다듬고 비석같이 글씨를 새겨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자주 찾는 상봉재 옛길 언덕 바위에는 7~8개의 마애비가 쓸쓸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손상이 심해서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선정비, 공덕비 같은 이름으로 보아 좋은 의미로 세운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런데 비석은 비석인데, 글자가 없는 ‘무자비(無字碑)’도 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이라는 뜻이다. 중국 베이징 근교의 산속에는 명 왕조 13명의 황제 능이 모여 있는데 이곳을 명13릉이라 부른다. 명13릉에는 태조 홍무제와 혜제 건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명나라 왕들과 23명의 황후, 2명의 태자, 30여명의 비빈, 1명의 환관이 묻혀 있다. 또한 명13릉의 대표인 정릉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 만력제의 ‘신공성덕비’인데 이것이 그 유명한 무자비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만력제가 여기에 자신의 공덕을 기록하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지만, 실제로 그가 한 것이라고는 나쁜 짓밖에 없어 그냥 백비로 남겨서 무자비가 됐다고 한다.

이 이외에도 유명한 무자비가 바로 섬서성 함양시에 위치한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함께 묻힌 건릉의 무자비이다. 물론 여기에는 측천무후가 자신의 공덕이 커서 다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무자비를 세우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반대로 생전에 잘한 업적이 전혀 없어서 비석에 글씨를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반대의 의미에서 세워진 무자비가 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마을 뒷산에 청백리로 유명한 조선 명종 때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박수량의 무덤에 세워진 비석이 바로 무자비(백비)이다. 조선시대 총217명의 청백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 분들 가운데 감사원에서 선정한 조선시대 3대 청백리는 황희, 맹사성, 박수량이다. 박수량 선생은 1546년(명종 1)에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중종실록’,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형조판서와 우참찬, 좌참찬의 벼슬을 거친 분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40여년의 관리생활에서도 집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던 것이다.

선생이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죽거든 시호도 정하지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라.”라는 유언을 했으나, 명종은 그의 죽음 소식에 ‘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 오래다.’라고 하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시신을 운구할 여력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인들로 호송하도록 지시한 데 이어 장례비용도 국가에서 지급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서해바다 암석을 골라 비석을 하사하고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한 후, 다만 그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해 이름을 ‘백비’라고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박수량 선생의 청렴한 뜻을 이어받기 위해 이곳 장성에는 청렴연수원이 있고, 해마다 수많은 공직자들이 이곳에서 선생의 높고 맑은 덕을 배우기 위해 연수를 받는다. 필자도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후 국민의 공복으로서 공무원의 자세를 가다듬고, 교사로서 사표가 되어 수 많은 제자들의 귀감이 될 것을 다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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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하 2015-03-30 12:45:23
검색을하다보니 우연히도 무자비에 대한 김명철 연구사님의 글을 접하게 되어 무척 반가웠읍니다 마침 저의 14대조부님의 묘비가 백비인데 그 내력을 몰라서 자손으로서 무척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족보에도 기록이없는데 절충장군 및 훈련원 도정을 역임했다고만 기록되어있어서 궁금합니다 전남도청에 문화재연구위원에게 문의도해봤으나 시원한 답이없군요 제 전화 남기겠습니다 혹시 통화가 가능할런지요?010 3852 6759이 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