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빚어낸 참사
속도가 빚어낸 참사
  •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 승인 2014.09.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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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요즈음은 한 두 시간씩 집 앞의 도로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편도 1차선의 지방도로다. 이런 시골길은 차선만 그어져 있을 뿐 인도는 없다. 이 길은 자동차와 경운기, 농기계, 자전거, 사람이 함께 공유한다. 물론 동물들도 이 길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 길에선 속도가 가장 빠른 자동차가 왕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도 아닌데 혼자만의 도로인양 질주한다. 우측통행으로 걷다보면 차가 뒤에서 달려오는데,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다. 스치듯이 질주하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이 몸을 휘청거리게 한다.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달려오는 차를 마주보며 걷는다. 차가 오면 운전자를 정면으로 주시한다. 그러면 좀 멀리 피해가기는 하는데 속도는 늦추지 않는다.

이 속도가 도로의 참사를 빚어낸다. 내가 걷는 10키로 미터 남 도로에서 거의 매일 동물의 사체를 목격한다. 소위 로드 킬 당한 짐승들이다. 족제비, 너구리, 고양이, 고라니 등 짐승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차를 타면 보이지 않는 뱀, 개구리, 지렁이, 사슴벌레, 짝짓기를 하던 왕사마귀, 방아깨비 등의 사체가 발밑에 널려있다. 뱀은 주로 밤에 도로로 올라온다. 몸의 보온을 위해 낮에 달구어진 따뜻한 도로에 나오게 되는데 그 대가는 혹독하다. 손가락 마디만한 새끼부터 제법 큼직한 뱀까지 많은 뱀들이 도로에서 죽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파충류나 곤충 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눈으로 식별이 가능한 포유류는 로드 킬을 막을 수 있다. 속도만 조금 늦추면 된다. 야간 운전 시 시속 80키로 미터에서는 갑자기 나타나는 동물들을 피하거나 급제동을 하기가 어렵다. 자칫 자신의 사고로 이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규정 속도인 시속 60키로 미터로만 달리면 동물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라도 급제동을 하거나 피해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인간의 속도에 대한 욕심이 짐승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속도는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산업화의 산물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상징되어온 산업화는 빠른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축적만이 유일한 가치로 인정되며 자본주의의 굳건한 토대를 이룬다.

이렇게 펼쳐지는 경제성장을 향한 무한한 속도 경쟁은 우리사회에 많은 폐해를 남기고 있다. 해마다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작업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백혈병 환자가 사망해도 그 속도는 늦춰지지 않을뿐더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파괴와 점차 개인주의화 되어가며 상실되는 인간성의 파괴는 경제성장을 향한 속도의 경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재앙이다.

이렇게 추구하는 경제성장 정책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초래하며 부의 세습과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들뿐이다. 만약 이런 사회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국가는 엄청난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복지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최소한이나마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는 복지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그런 단계에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도 국민 복지를 부르짖는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복지는 속도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는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느림이다. 느리게 주변을 돌아보며 살피는 것이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면 길에서 죽는 동물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발밑에서 죽어가는 파충류나 양서류, 곤충의 죽음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더 빨리 더 많이 얻기 위해 욕망의 속도를 즐기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앞만 보고 내달리는 고속 질주가 아니라 조금은 느리지만 우리가 내는 속도 때문에 다치거나 힘든 이는 없는 지를 살피며 속도를 낮추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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