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三苦)
삼고(三苦)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4.09.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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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9월의 중순, 아침저녁엔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성급하게 단풍 소식도 들려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예년 같으면 추석 준비에 분주할 시기이지만 올해엔 일찌감치 추석을 지낸 탓에 한가로운 가을을 맞고 있다.

대풍이라 들녘을 바라보면 마음이 넉넉하지만, 피땀 흘려 농사를 지은 분들이 수입농산물의 개방으로 풍요 속에 허전함을 느끼는 모습에, 농촌에서 자라 그 힘겨움을 알기에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가로수의 잎을 바라보면서 빠르게 지나갈 가을 뒤에 찾아올 겨울 생각에 또 한 살을 먹는다는 초조함이 일고 있다.

며칠 전 순교자 현양비(顯揚碑)를 참배하기 위해 중앙공원을 찾았다. 성급하게 떨어진 노랗게 익은 은행이 파란 하늘과 함께 가을을 안겨준다.

가끔 공원에 들러 순교한 분들을 위해 기도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공원에 모여든 노인들을 보면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곳을 찾는 분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윷을 놀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함께 놀이를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의 모습은 그래도 쓸쓸해 보이지는 않지만, 벤치에 홀로 앉아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보거나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외로워 보여 내 마음도 우울해진다.

노인을 위한 시설이 늘어나고 각종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함을 느끼고 시설 이용 방법에 대한 홍보와 안내가 좀 더 강화되어 많은 분이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 시끌벅적대던 우리나라의 가족제도가 언제부터인가 핵가족화되면서부터 자식들 키우고 가르쳐서 짝을 지어 내보내고 노년엔 친구가 서로 곁을 지켜주며 쓸쓸함을 달래준다.

인생살이엔 희로애락이 뒤따른다. 사는 동안 즐거운 일과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힘든 삶을 산 사람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젊었을 때 고생한 보람을 노년에서의 행복한 노후로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노인들 사이엔 인생 3고(苦)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어처럼 떠돈다.

질병의 고통(苦痛), 외로움의 고통(苦痛), 경제적인 고통(苦痛)이다.

점점 노령 인구가 늘어가고 수명이 연장되는 시점에서 나름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로병사는 어쩔 수가 없으니 몸이 아픈 게 고통이고, 취미생활도 하고 친구와 어울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이 듦에 허전한 외로움의 고통이다.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큰 고통을 겪는 분들도 많이 있다.

아픔의 고통과 경제적인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외로움의 고통은 누구의 도움보다도 자신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나이가 들면 돈을 세지 말고 친구를 세라’고 했다.

이제 나도 70을 향하고 있으니 3고(三苦)를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아픔도 외로움도 털어놓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더불어 지내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건강하게 살다 갈 수 있도록 자신을 관리하며, 순리의 삶을 받아들이는 긍정의 자세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친구와 함께 가을을 즐기려 숲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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