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숨이다
옹기는 숨이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4.09.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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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이천 쌀밥이 먹고 싶다는 남편을 따라 경기도 이천의 맛집을 검색하고 출발했다. 때마침 옹기축제도 있고 하니 손해 볼 일만은 아니다 싶어 따라 나섰다. 나이 들면서 고향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옹기 질감의 투박한 질그릇이나 자연 상태의 나무로 만든 정자이다. 긴장이 절정에 다다를 때 그 앞에 서면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여고 졸업반 겨울 김장을 하는 날이다. 가마솥에 돼지고기를 삶느라 정신없던 어머니는 청국장을 떠서 끓이라고 하고는 장독대와 부엌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안방이라는 말만 흘려듣고 벽에 매달린 흰 곰팡이 가득한 메주를 끌어내려 숟가락으로 독독 긁어 장을 끓였으니 엄청난 분량의 조미료를 써도 쓴맛이 가시질 않고 묘한 맛이 났다.

밥상 한쪽에 쌓여있는 메주 파편들을 본 동네 아주머니는 밥그릇을 엎어가며 박장대소를 했고 그 소문은 전파를 타고 온 동네로 퍼졌다. 책으로 장을 끓이라고 하면 잘했을 텐데 청국장과 된장도 구분할 줄 모르면서 시집은 갈 수 있겠느냐며 놀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게 결혼한 첫해 시어머니는 신접살림 선물이라며 항아리 다섯 동이를 싣고 오셨으니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읊조리고 입센의 『인형의 집』을 통해 ‘여성해방의 물꼬를 튼 노라.’ 식의 어설픈 문학소녀의 멜로는 그 시점으로 끝이 나고 철없는 낭만주의자의 혹독한 다큐멘터리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결혼한 첫해부터 고추장, 된장 담는 법과 김장배추 담는 법을 전수받고 경제활동을 병행하며 시가나 친가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하고 있으니 스스로 A 학점의 주부구단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남들이 애물단지라고 여기는 장단지에 대한 향수가 깊으니 하루속히 전원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식탁의 효소 열풍이 불면서 골동품으로 밀려났던 옹기가 하나둘 도심으로 들어앉는 걸 보면 우리 민족의 따뜻한 정서는 옹기에서 은근히 발현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같이 투박하고 누이같이 수수한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옹기, 옹기는 한국인의 얼이 스며있는 한국인의 상징이며 숨이다. 고향 뜰의 여유를 느끼게 하고 고즈넉한 기다림의 미도 맛보게 해서 도시민들에겐 고향을 대신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흙내음 풍기는 고향을 떠나 척박한 도심에 살면서도 기갈 들지 않는 것은 고향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옛것들이 우리 안에 부표처럼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도 아날로그를 꿈꾼다. 아궁이의 장작불로 지은 가마솥의 누룽지가 그리울 때면 밥을 태운다. 고향이 농산촌인 도시민들에겐 동네 어귀를 휘감던 밥 타는 냄새와 장독에서 된장을 뜨는 어머니의 모습은 고향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삶이 휘모리장단으로 몰아들 땐 여백의 공간을 마련하여 추임새로 힘을 주는 옹기, 뜸 들지 않은 날것이나 발효되지 않은 풋것처럼 거센 전투적인 세상을 옹기 속에 쟁여 놓고 은근히 숙성시키면 장맛처럼 농익은 세상이 올까? 

옹기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날 것으로 다가오는 숨이다. 이천 옹기점에서 질그릇 몇 점을 싣고 돌아오는 차 안이 에덴처럼 푸르다. 인공의 페르소나를 강하게 쓰고 살아온 탓인지 가끔은 질그릇 같은 자연 속에서 사회적인 가면을 벗어놓고 본래적 자아로 숨 쉬고도 싶다. 선악과를 먹기 전 에덴의 이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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