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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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9.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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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땅거미가 질 무렵 택배를 받았다. 음성에 계신 사돈댁으로부터 온 것이다. 커다란 포대에는 옥수수로 가득 차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골냄새, 아니 흙 향기가 코끝에 스며드는 듯하다. 사돈어른의 정성어린 선물이지 싶다.

사돈어른은 평생 농부로 살아오신 분이다. 논농사며 밭농사, 철철이 특수작물까지 매달리느라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오직 흙을 일구며 알뜰히 살아오신 터에 자식들을 독립시킬 수 있었다.

나는 사돈어른과 처음 만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큰딸의 혼사를 앞두고 만난 상견례자리에서다. 뵙는 순간 부드러운 흙의 기운이랄까. 훈훈한 기운을 느꼈다. 두 분의 표정은 황금들녘에 쏟아지는 햇살처럼 푸근하고 편안했다.

적당히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선 소박한 삶의 흔적이 배어났다. 마치 오래 알던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당장 내 딸을 맡겨도 안심이 될 정도로 인품이 원만하신 분들 같아 마음이 놓였다.

결혼은 두 사람의 약속이자 집안과 집안끼리 맺어지는 인륜대사다. 누구나 자녀결혼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만, 나는 딸의 선택에 흔쾌히 승낙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월하게 양가 모두 합의를 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예단은 생략하고 당사자들의 예물도 저렴한 커플반지로 대신했다.

기본 혼수에만 충실하였다. 그 때는 녹록지 않은 살림이었던 터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창피하거나 싫지가 않았다.

누구는 평생 한 번 뿐인 결혼식인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한 번의 체면치레로 무엇이 가려질 수 있는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새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딸의 결혼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농사도 물과 햇볕, 거름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자식은 부모님의 노고와 사랑으로 키워낸 열매인 것이다. 옥수수 알을 감싸고 있는 겉껍질을 벗겨내며 자식들을 키워내신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생각했다.

늦은 밤 안사돈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밝은 목소리로 화답하신다. 맏며느리 노릇이 힘들 텐데도 내색 없이 잘하고 있다며 신경 쓰지 말라신다. 되레 아이들 키우며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일 거라며 안쓰러워하신다.

들춰내면 내 자식의 흠이 왜 없으랴. 아직도 야무지게 살림 못하는 철부지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도 어여쁘게 봐주시고 감싸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있으랴.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인가. 부와 명예도 아니고 값비싼 선물도 아니다. 자식이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 서로 아껴주며 무탈하게 사는 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나도 살아오면서 깨달았다.

비록 딸 부부의 시작은 초라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아마 물질이 우선이라 여겼다면 시작부터 부딪혔을 것이다. 두 사람만의 견고한 사랑이 탄탄한 울타리를 만들었으리라.

사돈어른이 보내주신 옥수수가 찜통에서 노르스름하게 익어가고 있다. 맺힌 물방울이 사돈어른의 굵은 땀방울 같다. 둥근 옥수수 알들처럼 사돈어른의 정성어린 마음이 내 가슴속에 촘촘히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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