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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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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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교사들이 묻는다
박 을 석 <전교조 충북지부 정책실장>

중국 송나라 시절에 소동파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시뿐 아니라 서화에도 뛰어났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없다는 자만심으로 살았다. 그런 소동파가 형주 고을에 머물 때, 하루는 옥천사의 승호선사를 찾아 갔다.

선사는 "대관의 존함은 어찌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칭(秤)가요"라고 소동파가 대답했다. "칭(秤)가라니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천하 선지식(스님)을 저울질 하는 칭(秤)가라는 말이오"하고 소동파가 오만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선사는 "악"하고 벼락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물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몇 근이나 되지요" 소동파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천하제일의 저울이라 해도 소리는 무게를 달 수 없는 법이었다. 승호선사는 평가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었고, 상위(上位)의 평가자임을 자처하던 소동파는 깨끗이 지고 말았다.

자못 불교적인 옛이야기지만, 자칭 평가자가 처할 수 있는 한계와 평가 가능한 범위의 한정적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새삼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까닭은 최근 십 수 년, 특히 노무현 정권 이후 심화된 평가의 과잉 또는 평가만능주의 때문이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선정을 위한 평가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공무원들도 기관평가, 인사고과평가, 각종 사업영역별 평가에 얽매여 있다. 민간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평가에 대한 진지한 집단적 반성을 못하고 있다. 정당한 평가인지, 적절한 양과 내용의 평가인지, 꼭 필요한 평가인지, 어떤 평가를 우선해야 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평가인지 묻지 않는다. 평가는 많을수록 좋다고 막연히 믿으며, 평가결과는 곧잘 신뢰하고 수용해버린다.

학교는 또 어떤가 학생들에게 강제되는 과도한 평가는 오히려 자기주도적 학습을 저해하고 있다. 진단평가, 중간 및 기말고사, 수능모의고사, 사설모의고사, 학업성취도평가, 수능고사 등등 한 해 동안 시험보는 날짜만 뽑아도 족히 한 달은 된다던가.

교사들도 평가에 속박되기는 마찬가지다. 장학평가(수업공개후 체크리스트 점수화 평가를 한다), 올해 들어 연 2회로 늘어난 성과급 등급 평정, 학교관리자가 시행하는 근무평정, 이에 더하여 졸속적인 시범실시 후 법제화하려는 교원평가는 두 겹의 지붕에 덧지붕을 올리는 격이다.

모든 학교가 받아야 하는 학교평가도 문제다. 기안문 복사, 사진자료, 책자 등 각종 증거물을 면장철에 끼워 제출해야 한다. 청주시내만 해도 수십명 교감들이 조를 짜서 종일토록 방문평가를 한다. 학교평가에서 나아가 지역교육청이나 도교육청도 기관평가를 포함한 각종 평가를 하고 받는다.

가히 학교는 평가로 교육을 시작하고, 평가를 위하여 교육하고, 평가로 교육을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에 대해 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비하고, 학교를 포함한 교육청 평가의 자료를 만드느라 교사들은 삼중(三重)의 짐을 지고 있다. 그 와중에 교사들은 정상 교육활동을 방해 받아 아프고, 평가준비 하느라 아프고, 평가만능주의의 뭇매를 맞아 아프다. 아픈 교사들이 묻는다. "전국적 파급효과가 있고 수백억 예산을 쏟아붓는 교육정책 평가, 정책입안자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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