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지 같은 삶
정구지 같은 삶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9.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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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담장아래 소복소복 올라온 정구지가 길게 뽑아 올린 꽃대에 하얀 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기온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피고 있다. 잎은 녹색 줄 모양으로 길고 좁으며 연약하고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자라서 끝에 큰 산형꽃차례를 이룬다. 화피갈래조각과 수술은 6개씩이고 꽃 밥은 노란색이다.  

정구지는 부추의 방언이다. 마트에 가서 정구지를 사려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른다. 다시 부추라고 말하면 알아듣고 정구지라는 이름이 우습다고 한다. 고향에서 사용한 정구지란 이름이 정겨워서 사용하는 사투리로 사람들을 잠시 웃게 한다.

부부간의 정을 오래 유지시켜 준다하여 정구지,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좋게 한다고 하여 온신고정, 부추 씻은 첫물은 아들도 안주고 신랑만 준다하고 부추한줌이면 백년 묵은 체증도 가신다는 정구지에 얽힌 재미있는 속담도 꽤 많다. 부추 잎 당질은 대부분이 포도당 과당으로 구성되는 단당류이고 냄새는 마늘과 비슷해서 강장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발효식품인 된장이나 김치와도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채소다. 베어내도 잎이 자꾸자꾸 나오니 재배하기도 쉽다. 영양은 또 말할 것도 없다. 부추에 들어있는 알라신 성분은 비타민 B1의 흡수를 도와 체내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는데 덕분에 부추는 강정식품의 대표주자인 것 같다. 알라신은 소화가 잘 되게 하고 살균 작용까지 하여 고기를 조리할 때 함께 먹으면 좋다. 비닐줄기는 밑에 짧은 뿌리줄기가 있고 겉에 검은 노란색의 섬유가 있다.

정구지는 한번 심겨진 곳이면 베고 또 베어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잎이 쑥쑥 자란다. 뜯을수록 야들야들 올라온 부추를 보면 요리가 하고 싶어진다. 정구지는 봄부터 여전히 우리 집 반찬으로도 즐기며 감초 같은 야채다. 파가 없으면 파 대신 쓰고 부추 전, 부추겉절이, 오이소박이에도 넣고 오리훈제와도 곁들인다. 그중 부추김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부추는 그리 별 맛은 나지 않는다. 알싸한 파 냄새가 나고 입에 넣으면 좀 질기고 미끄럽다. 찌개를 끓이면 잎줄기는 후줄근해졌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열심히 씹어도 잘 으깨지지 않아 그저 다른 음식과 함께 씹어 삼킨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리 중요하지 않은 야채인 것 같은데도 정구지의 효능과 영양은 그 어디에 비하겠는가.

어릴 적 여름날의 일상은 멱 감는 일이 많았다. 찬물에 자주 들어 가다보니 목이 부어서 아플 적이 많았다. 이럴 때면 할머니께서 날 부추를 찧어 목주위에 붙여주셨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금방 낫는듯하였다. 부추는 통통하고 기다란 잎은 물론이고 뿌리와 꽃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지인 중에 정구지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하루 24시간을 25시간으로 사는 사람, 직장에서는 상사 대접을 받기보다는 손수 끓인 차 한 잔으로 기쁘게 손님을 대접하고 직원들에게는 좋은 환경 좋은 분위기에서 어떻게 하면 복지혜택을 골고루 줄 수 있나 하고 노력 할 수 있는 권위를 누린다며 크게 웃는 사람, 부모님께 기쁘게 효도하는 사람, 말을 조심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 자상함, 다정함, 남이 하기 싫은 하찮은 일을 선택하여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 배려심, 팔색조의 매력으로 중무장한 부추처럼 그 사람의 묘한 매력은 어디까지 일까 생각하게 되고 사람이 어떻게 이리 살수가 있을까 존경스런 그를 보며 당장 나를 돌아보게 된다.

가을 정구지도 파릇하기는 똑같다. 하얀 별꽃을 매달은 정구지를 보면서 남들에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슬슬 긴장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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