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에 매달린 다람쥐(2)
절벽 위에 매달린 다람쥐(2)
  •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4.09.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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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어느 날 한 절에 주지스님이 사미승을 한 명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 겨울에 폭설이 내려 교통이 끊기고 절이 고립되었다. 산사에 공양은 떨어지고 결국 스님과 사미승은 굶주림에 쓰러졌는데 스님의 꿈에 보살이 나타나 절 뒤편에 가보라고 했다. 스님이 정신을 차려 절 뒤편에 가보니 작은 바위구멍에서 쌀이 한 줌 흘러 나왔다. 그것으로 굶주림을 면했는데 그 후에도 계속 쌀이 꼭 한 줌씩만 흘러나와 더 이상 곡기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눈길이 열린 봄 날 인근을 지나던 수도승들이 들렀다. 수도승들의 곡기를 준비하던 사미승은 불현듯 조급증을 느껴 얼른 쌀을 받아낼 마음으로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구멍을 쿡쿡 쑤셨더니 바위 구멍에서 쌀 탄내가 나면서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바람만 나왔다고 해서 바람혈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청원 선사께서 수도 중 암굴에서 쌀(供養米)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청원선사께서 열반에 든 후 천공(天供)이 끊어졌다고 하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스님의 말에 의하면 바람혈에서 지금은 쌀이 아닌 물이 나온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이 절에 오셔서 수도하실 때 이 절이 위치한 산을 아홉 줄기가 강물에 뻗어있다 하여 구룡산이라 이름 붙였다. 또 절벽에 매달려 있는 암자라 해서 이 절을 매달을 현, 바위 암자를 따서 현암이라 하였다. 원효대사께서는 이 절의 대웅전은 구룡산 청룡날, 즉 등에 위치한 모양이라 하시고 천여 년 후에 청룡 등 앞에 세 호수가 이룩된다고 하였다. 삼호가 조성되면 구룡산 청룡날 앞에 임금 왕(王)자 지형이 되어 국왕이 주(住)하게 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예전에 현암사 한 모퉁이에 삼호루(三湖樓)라는 누각이 있었고 편액이 전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삼호는 지명으로 나타는데, 대청호 보조댐이 있는 용호(龍湖), 대청호가 미호(迷湖), 청남대가 있는 곳이 황호(潢湖)이다. 또 원효대사는 이 산이 국토의 중심이 되고 이 절에서 불법(佛法)이 번창하고 왕성한다고 하였다. 구룡산 청룡날 바로 앞 댐 건너에는 향로봉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장군 무리가 그곳에 이르러, 구룡산의 정기를 끊고자 산세를 살피는데 갑작스런 기상변화로 산의 정기를 끊지 못하였다 한다. 그리고 향로봉에서 향을 피우고 무사히 군졸이 돌아가기를 기도했다 하여 그 후로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현암사는 1984년 도공화상이 주지로 부임했을 때 삼성각과 대웅보전, 그리고 부속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그런데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한때 많은 탄압을 받았던 절이기도 하다. 현암사에서 청남대가 빤히 보인다는 이유로 전두환 대통령 정권 시절, 절을 없애라는 탄압에도 꿋꿋이 버티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절 뒤편으론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굽이굽이 그림 같은 대청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섬 같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호수를 한층 운치있게 한다. 쪽빛 호수에 산 그림자가 비치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다른 절과 별다를 것은 없지만 하늘과 구름과 물, 그리고 전설이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이곳에 오면 조금까지도 가졌던 욕심을 이내 내려놓게 된다. 108계단을 내려오며 한결 가벼워진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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