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녀와 호로자식
환향녀와 호로자식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14.09.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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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가노라 삼각산아’ 이 시조는 김상헌 선생이 피눈물을 흘리며 남긴 시조다. 이 글의 삼각산은 북한산을 말한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가 뿔처럼 서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나이 70세에 청나라에 포로로 붙들려 고국을 떠나면서 북한산과 한강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세력과 인조는 병자호란을 당해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항복하고 만다. 인조는 피난처 남한산성에서 한강 나루터 삼전도로 나와 침략자를 향해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언 땅에 아홉 번 머리를 박는)를 행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에 인조임금의 이마가 짓이겨져 피가 흘렀다. 침략자들은 물론 조선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1637년 1월 30일, 치욕적인 이날을 삼전도의 치욕이라 한다.

김상헌은 이때 ‘항복하자’며 주화파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었던 사람이다. 국서를 찢은 죄를 청하며 죽여줄 것을 왕에게 요청했던 강직한 분이 바로 김상헌이다. 결국 그는 수십만명의 조선 여자들과 함께 포로로 청에 끌려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포로만 60만 명인데, 그중 여성이 5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 환향녀들은 절통함과 비통함이 설움의 무게에 짓이겨지고,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행실이 나쁜 여자인 화냥년의 어원이 바로 환향녀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은 오히려 큰 사회문제가 됐다. 실덕을 하고, 절개를 잃고 돌아온 여자들에게 한양 도성 북쪽 홍제천에 몸을 씻고 들어오면 그간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는 기발한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역사인가?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니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서 몹시 버릇없는 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청의 포로 또는 노비, 즉 ‘호로’나 ‘호노’에서 온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환향녀라는 한자어의 발음이 화냥년으로 변한 것이라면, 그 환향녀가 낳은 아이가 호로자식이 되는 것이다. 힘없는 민족의 백성에게 원죄처럼 남겨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비극은 삼전도비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조선의 여인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환향녀’로 만든 청나라 황제의 공덕을 칭송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치욕의 기록이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말 속에도 민족의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아무 말이라고 함부로 하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망한다. 자랑스런 역사는 긍지로 삼고, 수치스런 역사는 가슴에 새기자. 특히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영토분쟁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침략근성을 들어내고 있는 일본을 직시해야 한다. ‘종군위안부’를 ‘일본군강제성노예’로 명칭도 바꾸자. 잘못된 역사는 지금부터 바로 잡자. 이제 다시는 화냥년이나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쓰지도 말자.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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