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너와 함께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9.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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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오랜만에 함께해서 좋았어. “나랑 음악회에 가줄래?”라는 말에 선뜻 따라 나선 네가 고맙더라. 나이가 드니까 작은 것에도 감동을 하나봐. 요즘 학교생활에, 동아리 활동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솔직히 네가 몹시 바쁘잖아. 그렇게 즐겁게 알차게 또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네가 예쁘더라. 그런데 약간 지쳐보였어. 잠시 숨을 고르라고 내가 음악회 티켓을 내민거야.

첫 번째 곡은 ‘20 century fox opening’이었지. 귓전에 쏟아지는 음악을 담으며, 오래전 봤던 영화와 아버지가 떠오르더라. 예전에 명화극장이라는 프로가 있었어. 그 곡은 영화 상영시 늘 나오던 곡이었어. 늦도록 잠은 안자고 영화를 보던 내게 아버지는 걱정 어린 핀잔을 하시곤 했지. 그래도 난 꿋꿋하게 영화를 사수했단다. 두 번째 곡부터 너는 졸더라. 고개를 허공에 저으며 흔들리는 모습이 참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어. 관현악단 지휘자의 손놀림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흔들리는 너의 고개를 잡아서 난 내 어깨에 고정 시켰어. 그래도 명색이 음악교육과인데 음악회에 와서 그렇게 어이없이 졸다니 ......

동아리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여기저기 공연 다니느라 힘들어서인지 너의 몸에서는 땀 냄새까지 나더라.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소리를 타고 콧속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땀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일에 조건 없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너의 모습이 젊음의 특권인 것 같아 흐뭇하더라. 내 나이에는 슬프게도 조건도 따져서 달려들거든.

일부가 끝나갈 무렵 라틴재즈 방식으로 편곡된 음악이 연주되자 너는 깨어나서 다시 음악에 집중하더라. 그러더니 이부에서 유명 뮤지컬 배우가 지킬앤하이드에 나오는 ‘This is the monent‘를 부르자 언제 졸았냐는 듯 함께 따라 부르더라. 내가 그 배우에게 환호하고 두 팔을 벌려 손을 흔들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더니 씨익~ 웃더라. 내가 마치 네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어.

돌아오는 길에 “오늘 어땠어?” 하고 물으니 넌 마지막 앵콜 곡이 제일 좋았다고 했지. 왜냐고 하자 “코드가 단조인지 장조인지 구분할 수 없게 모호하게 연주했고, 그렇게 모호한 코드를 사용했음에도 전달하고자하는 느낌을 잘 표현해서 신선했어요.” 라고 하더라. 조느라 음악을 못 들었을 줄 알았던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난 호기심이 발동하여 또 물었지 “그리고?” 넌 눈빛을 빛내며 말하더라 “연주 시작 전 첼로를 여러 바퀴 회전시켜 볼거리를 제공했고, 연주 중간부에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유도하여 음악의 일부로 차용함으로써 구성의 다양성을 보여준 듯해요. 또 클래식의 범접하기 힘든 부분을 팝과 믹스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려는 클래식의 역설적인 시도랄까 그런 것이 좋았어요.” 내가 “또 없어?” 하고 묻자 넌 열변을 토하더라 “지휘자가 뒤를 돌아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의 권위가 일반인들에게 허물어져 내려오는 느낌이었어요.” 듣는 듯 안듣는 듯 넌 다 이해하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밤의 선율을 뒤로하고, 검게 풀어헤쳐진 어둠속을 지나 집에 돌아왔지. 제법 서늘해진 바람이, 가을이 와도 되는지 간보러 나온 정찰병처럼 조심조심 내곁으로 스쳐 불었어. 잔잔한 행복감이 가슴속으로 파고 들더라. 아들아~ 우리 바쁘더라도 가끔 음악회에 가자. 약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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