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식 소식 기다리며 밭으로 … "어머니, 사랑합니다"
오늘도 자식 소식 기다리며 밭으로 … "어머니, 사랑합니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9.0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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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 아! 어머니
어머니는 밭에 계신다

긴긴 여름 그 뜨거운 햇빛 아래

삶의 가시덩굴 같은 쑥부쟁일 캐며

어머니는 언제나 밭에 계신다

어둠이 내려도 밭에 계신다

어둠과 한 몸이 되어 밭에 계신다

아, 그 때 어두컴컴한 산마루에

가난한 우리 마을의 초승달이 뜬다

흰 눈물자국 같은 이 땅의 초승달 뜬다

- 김선태의 시 ‘어머니’

◈ 어머니의 홍삼 캔디

'인생을 달달하고 건강하게' 가슴에

강대헌(에세이스트)

지금은 풍경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산(算)가지놀이, 강강술래, 씨름, 제기차기, 딱지치기, 투호놀이 등으로 누구든지 흥에 겨워 들썩거리던 한가위를 코앞에 두고는 김선태 시인의 ‘어머니’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시인과 저의 공통점이 있군요. 바로 어머니를 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모든 인류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숨을 쉬고 있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식을 키우려면 밭을 떠날 수 없는 게 어머니의 신세인가 봅니다. 자식이 어느 정도 커서 세상에 내보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세상이 그리 뜻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지요. 어머니의 손바닥에 메울 수 없는 고랑이 깊이 파여도 손에서 호미를 놓지 못함은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겠죠. 그렇게 집 떠난 자식의 소식을 밤이슬에 몸이 젖어도 밭을 오가시며 기다리셨을 어머니입니다.

그저 자식을 위해서라면 초승달의 질긴 서러움일지라도 마다하지 않으신 어머니, 초승달만 바라보다가 초승달 같은 눈물을 흘리신 어머니, 자식에게 만월(滿月)의 기쁨을 안겨주려고 당신의 마음마저도 싹둑 베어내 주신 어머니…. 천 마디 말로도 다할 수 없는 고마우신 어머니.

프랑스의 루익 프리정 감독이 만든 ‘칼 라거펠트, 인생을 그리다(Karl Lagerfeld Sketches His Life, 2012)’에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었다는 말은 놀랍도록 충격적이었습니다.“너는 나를 닮았지만, 나보다는 못해.”

처음엔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식에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을 정도로 제 귀를 믿지 못했지만, 시간을 두고 거듭 생각해 보니까 당연한 말이더군요. 어머니의 태중(胎中)에서 만들어진 자식으로서 어머니보다 잘났다고 말한다는 것이 도리어 괘씸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고향과 같은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면, 보름달 없는 하늘처럼 적막강산(寂寞江山)이 따로 없을 겁니다.

이제 칠순 중반을 바라보시는 저희 어머니가 즐겨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붉은 색 포장지에 싸인 홍삼 캔디를 제 손에다 꼭 쥐어주시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홍포(紅袍)를 두른 의젓한 관료를 영접하는 기분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인생을 달달하고 건강하게 살라는 귀한 뜻을 새겨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늘 주시고, 저는 꼬박꼬박 받아먹기만 하는군요.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허리가 많이 굽어 걱정이 큽니다. 꼿꼿하던 젊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당신의 신음 소리가 높아질 때가 많더군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어머니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바람이 있기에, 오늘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 퍼주고 베풀라시던 어머니

세월 흘러 깨달은 박경리·엄마의 삶

이은희(수필가)

아직은 초록이 무성한 돌담길을 돌아 뜰 안으로 들어선다. 길 위에 깔린 돌들은 선생이 손수 돌을 주워와 깔았단다. 그걸 아는 난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선생은 즐겨 앉던 바위에 앉아 나를 보고 어서 오라고 손�!求� 듯하다. 누워있던 고양이도 덩달아 일어나 나에게 달려오는 듯 환영이 보인다.

선생은 말년에 후배들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셨다. 창작공간을 내주고, 손수 풋 거리를 키워 수확해 밥을 지었단다. 뜰 안에 들어온 숨탄것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병든 몸을 지키기도 어려운 지경에 남을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은 헌신의 삶. 여러 번 들어도 물리지 않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일화다. 환히 웃고 계신 박경리 선생의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리운 친정어머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퍼주고 베풀어라!”  

아마도 이 말씀은 어려운 역경을 딛고 집념의 역정을 살아온 박경리 선생과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베풂의 삶을 실천한 어머니의 삶을 요약한 문구라도 과언이 아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리라. 남편과 아들을 잃고 아픈 속내를 숨기고 문학적으로 승화한 선생의 삶이나, 어린 아들 둘을 잃은 각고의 인내와 베풂의 삶을 펼치다 떠나가신 어머니의 삶이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선지 박경리 옛집을 찾을 때마다 친정어머니가 몹시 그리워진다.

동네에서 우리 집은 딸 부잣집 아니면 부녀회장 집으로 불렸다. 그 호칭은 나에겐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열 식구 거두기도 벅차실 텐데, 어머니는 수십 년 동안 동네일을 맡아 봉사하셨다. 한 달에 한 번 홀로 된 노인들의 이발을 손수 해드리고, 동네에서 거둔 폐휴지나 고물을 팔아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국수를 나누었다. 그것도 모자라 생계가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동사무소를 찾아가 쌀 배급이 나오도록 발품을 파셨다. 내가 본 어머님은 남에게 늘 무언가를 베푸느라 바쁘셨다. 어떤 때는 자식은 뒷전이고 이웃을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은 늘 품앗이를 하러 온 동네 아주머니들로 붐볐다. 아예 자기 집인 양, 세끼를 해결하고 돌아가는 어른도 있었고, 어린 동생들도 하루를 멀다 하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조용한 날이 없었다. 사춘기를 맞은 딸로선 사람들이 들끓는 집이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산사에 비구니처럼 조용히 지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으랴.

박경리 선생이 남긴 문학과 삶 “퍼주고 베풀어라!”라는 말씀을 깊이 새긴다. 우리는 이 말씀을 고견으로 알고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리라. 철없는 이는 세월이 흘러야 깨닫는가. 당신이 내 곁을 홀연히 떠나고야 당신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를 보듬고 기대며 살아간다.

생명을 근원으로 알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어머니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어지는 명절 밑이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도 마음을 여는 가을밤. 한가위 보름달이 두둥실 떠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이 땅에 살아있는 생명과 돌아가신 두 분을 위하여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오래된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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