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는 왜 대추와 밤을 쓸까-우리가 그리는 풍속화
명절에는 왜 대추와 밤을 쓸까-우리가 그리는 풍속화
  • 김영미 <수필가>
  • 승인 2014.09.0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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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영미 <수필가>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도시는 한산해지고 고속도로마다 고향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긴 행렬이 이어진다. 그동안 흩어져 지냈던 식구들이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을 향하는 정겨운 모습은 우리 민족만이 그려낼 수 있는 고유한 풍속화다.

명절 차례상에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밤과 대추, 배와 감을 우리는 무심코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에는 오롯한 뜻이 담겨있다. 차례상은 풍성하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대추 하나를 올려도 그것을 올리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올린다면 의미있는 일이리라.

대추나무(棗)는 암수가 한 몸이고 한 나무에 많은 열매가 달리는데 꽃 하나에 반드시 열매가 맺히고 나서 꽃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헛꽃은 절대로 없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추는 통씨여서 절개를 뜻하고 순수한 혈통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또 대추는 붉은색으로 임금님의 용포를 상징하고 씨가 하나다. 열매에 비해 씨가 큰 것이 특징이므로 왕을 뜻한다.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의미와 죽은 혼백을 왕처럼 귀히 모신다는 자손들의 정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밤이다. 밤나무(栗)는 땅 속에 밤톨이 씨밤(생밤)인 채로 달려 있다가 밤의 열매가 열리고 난 후 씨밤이 썩는다. 그래서 밤은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밤나무로 된 위패를 모시는 이유가 바로 이런 뜻이다. 밤이 익으면 쩍 벌어지듯이 아기가 성장하면 “이제 품 안에서 나가 살아라” 하는 의미로 독립된 생활을 시킨다는 뜻이다. 밤은 한 송이에 씨알이 세 톨이니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의미한다.

배(梨)는 껍질이 누렇기 때문에 황인종을 뜻하고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흙(土)의 성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배의 속살이 하얀 것은 우리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내는 제물로 쓰인다. 배는 씨가 여섯 개여서 육조(이, 호, 예, 병, 형, 공조)의 판서를 의미한다.

다음은 감(?)인데 감의 씨앗을 심으면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난다. 그래서 3~5년 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를 잘라서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 다음해부터 감이 열린다. 감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받들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나무를 꺾어보면 속에 검은 신이 없고, 감이 열린 나무는 검은 신이 있다. 이것을 두고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상하였다 하여 부모를 생각하여 놓는다고 한다. 감은 씨가 8개 여서 8도 관찰사를 뜻한다. 후손에 8도 관찰사처럼 훌륭한 인물이 나오라는 의미이다.

제사나 차례상을 진설할 때도 이런 지식을 갖추고 차린다면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절로 우러나오지 않을까 싶다. 조상의 공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은 자손된 당연한 도리로서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전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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