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천사들에게
이 땅의 천사들에게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09.03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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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하늘에만 천사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이 땅에도 천사가 있다. 우리와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똑같은 사람 중에 분명 천사가 있다. 단지 날개가 없어서 날지 못할 뿐, 사람들은 그들을 기부천사라 부른다.

기부천사!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 것을 내어놓는 선한 사람들. 그들은 결코 남아돌아서, 창고가 가득차서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헐벗고 주린 자를 위해, 부족해도 곡간이 비어도 우선 내 것을 내어 주는 사람이다.

기부(寄附)의 사전적 의미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이다. 유의어로 기탁, 증여 등이 있다. 기부의 종류에는 보유재산(돈, 주식, 토지, 특허권, 소장품 등) 중 일부를 내어놓는 물질기부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내어놓는 재능기부가 있다.

이외에도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나, 봉사단체들의 봉사활동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갖고 싶은 소유욕이 있다. 모두들 성공하면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벼르지만, 99억을 벌면 100억을 채우고 싶어 안달하는 게 인간인지라, 일정한 경지에 올라도 쉬 베풀지 못한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힘들게 모은 재산을 쾌척한다는 건 결코 범부가 흉내 낼 수 없는 초인적 미덕이기 때문이다.

돈이 뭐라고 유산상속 문제로 형제간에 칼부림을 벌이고, 남의 것을 뺏으려고 사기치고, 힘없는 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이윤에 눈멀어 부실공사를 하고, 세금을 덜 내려고 편법증여하고, 빌린 돈을 떼먹기까지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뇌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데 써 달라’며 KAIST에 전 재산 515억 원을 기부한 후 전셋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정문술 사장. 노점상을 하며 모은 전 재산 43억3천만 원을 충북대에 기탁한 신언임 할머니.

1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4억여 원의 성금을 기탁한 신원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 원을 넣고 사라진 얼굴 없는 천사. 연예계 기부왕인 가수 김장훈과 영화배우 문근영. 이들은 모두 초인이자 기부천사들이다.

세상에는 이런 천사도 있다.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남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재능기부천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있어 양로원과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생기 없는 얼굴에 웃음이 묻어나고,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우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처럼 어둡고 소외된 곳을 찾아가 시와 노래와 춤과 연주로 기쁨을 나누어 주는 재능기부자, 무의촌에 무료진료 나서는 의사들, 사랑의 가위를 들고 시골마을을 찾아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이·미용사들, 허물어가는 독거노인의 집을 수리해주는 건축사, 거동 불편한 결식자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자 천사들이다. 그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다. 이처럼 타인에게는 고마움이 되고, 자신에게는 행복이 되며, 사회에는 희망이 되는 것이 기부의 원형이다.

그러므로 기부는 병든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묘약이며, 기부문화는 삭막한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다. 우리 민족은 정이라는 DNA를 가지고 있다. 일등지상주의 경쟁문화가 우리의 정을 앗아가고 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던 우리 민족이 나눔과 배품에 인색해진 것이다.

이제 그대가 나설 때이다. 천사지심을 갖고 있는 그대가 아니던가♣ 지금 이 순간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고, 호주머니를 비우거나 재능을 기부하면 그대가 바로 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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