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다녀가셨다
어린왕자가 다녀가셨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9.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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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말에 꽃이 말합니다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서 바람에 떠밀려 다녀요. 그래서 살기 어려워요” 영원한 동화의 고전 생택쥐 베리의 <어린왕자>에서 꽃과 주인공이 나눈 대화입니다.

주인공은 장미가 5000송이나 있는 사막을 보고 놀라면서도 심심하다며 여우에게 놀아 달라 하지만 여우는 아직 길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에 놀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길들여진다는 것은 인연을 맺는 것이고 인연을 맺는 것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특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임을’ 주인공인 어린왕자에게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어린왕자는 떠나오기 전에 자신이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를 해주었던, 수시로 다투기까지 했던 장미만이, 보다 소중한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장미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역대 266인의 교황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특별한 인연을 가진 교황은, 단 2명뿐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특별한 시간 특별한 인연을 놓고 볼 때, 266명 중에 단 두 명의 교황만이 우리들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두 번 찾은 요한바오로 2세는 당시 ‘순교자의 땅’이라며 비행기에서 내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었으며, 도착성명에선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한국어로 말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분단과 대립의 이 땅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는 미래를 기원했으니, 지난 8월 18일 한국 방한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까지, 이 시대 마치 혹한의 추위를 방불케 하는 불신과 미움이 팽패한 시절에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다녀갔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입이 아닌 실천으로 교황은 친히 인연을 만들기 위한 시간을 내어 우리와 함께 했으니, 무엇이든 행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듯이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단 하나의 소중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단 하나의 소중한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가는 곳마다 아기를 안아 올림으로서 아기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한국평화를 기원했습니다. 기꺼이 78세의 나이로 4박5일간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꺼움이라면 우리도 빠질 수 없습니다. 선교사 없이 타종교를 받아들인 기꺼움이야말로 세계 13억 카톨릭 신자의 신비이며, 저항의 민초로 부터가 아닌, 사회적 지위와 학문의 성취가 남다른 학자들로부터 받아들인 특별함도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미워하는 자를 천주교인이라고만 하면 쉽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시대. 어떡하든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든 빨갱이라고만 하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시대. 우리 모두는 정의로서 실천하려는 의지가 약해지면 희생자를 낸 후에야 잠잠해 지는 역사에 길들여져 여기쯤서 피어 헝클어진 소중한 꽃들 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분명 눈에 보이진 않지만 스스로 발전시키고 정화시킬 기꺼운 유전자가 있습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엇이든 마음으로 보아야 해”라며 삶의 소중한 비밀을 일러 주었지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으니, 교황이 그토록 일일이 마주한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겁니다. 어린왕자 이야기엔 보아 뱀 그림이 나오고. 코끼리를 삼킨 그 보아뱀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모자가 무엇이 무섭냐고들 하다가, 드디어 뱀 허리에 코끼리를 그려 놓으니 그제야 무섭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이 가장 중요한 까닭을 곰곰 생각합니다.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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