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그리고 기억
역사 그리고 기억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4.09.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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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안방문을 열면 키 낮은 책꽂이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남편이 소식지들을 모두 정리하고 집안 족보들을 꽂아놓은 것. 어둡고 낡은 기록들이 길게 늘어선 책꽂이. 오래 묵은 종이냄새가 마음을 흔든다. 남편은 족보들을 쳐다보며 흐뭇한 모양인데 나는 막연한 의무감으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지난 일요일. 시댁 벌초가 있었다. 예전엔 산지기가 있어 시사와 벌초까지 큰 고민이 없었는데 몇 해 전 그만둔 뒤로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벌초대행업체에 맡기자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유교적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집안인지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육촌에 칠촌 조카까지 참여하는 벌초는 가장 큰 집안 행사가 되어 버렸다. 남자들이 벌초하러 간 사이 모처럼 모인 여자들은 점심을 준비하는 틈틈이 밀린 안부도 물으며 오랜 회포를 푼다. 덕분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먼 조카들의 근황까지 세세히 듣는다. 일 년에 두어 번 이런 만남이 참 좋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건 벌초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올해도 공부하느라 혹은 직장사정으로 젊은 조카들이 불참한 자리를 머리 하얀 어른들이 채웠다. 가장 젊은 사람이 오십대 중반인데 그도 둘 뿐이다.

그런데 벌초가 끝난 뒤 일이 생겼다. 한 해 한 해 쇠약해지는 모습이 안타까운 육촌 아주버님께서 쇼핑백을 여러 개 차에서 내려놓으셨다. 족보였다. 누구도 선뜻 가져간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을 깬 건 남편이었다. 결국 안동김씨 긴 세월의 기억은 우리 집에 자리를 잡았다.

결혼 전 처음 인사드리러 간 자리에서 시아버님은 내게 본관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그리곤 족보를 열어 남편 이름 옆에 메모지를 붙이셨다. 낯선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그 자리가 내겐 의아하고 낯설기만 했는데 그렇게 족보로 묶인 가족들은 지금까지 집안 대소사 때마다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족보란 그렇게 지나온 세월의 발자국이기도 하다.

족보를 보면 해당 씨족 중 맨 꼭대기에 있는 시조는 역사상 이름난 인물이다. 어떤 학자는 시조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일정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이 추대해 넣은 인물이라고 정의한다.

본관이 된 지역에 먼저 자리 잡은 일족이 있더라도 시조가 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비록 허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기록이라도 당대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정체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기억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조상들의 삶과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기억이 나란히 섞이어 새롭게 만들어가는 역사인 족보. 변화하는 현대 문명과 가치 속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기억들이 안타깝다. 후일 내 아들은 족보를 어떤 마음으로 대할까. 숙제를 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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