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버섯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8.3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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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아침 흥덕사지 산책길에 비가 내린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산속의 낙엽을 적신다. 산책 코스를 두 바퀴 돌고 굴참나무가 숲을 이룬 언덕배기로 발길을 옮긴다. 비에 젖은 수북한 낙엽들이 초췌하다. 얼마 전 기관에서 예초기로 잡풀을 모두 깎아 부엽토로 바뀐 낙엽이 드러난다. 발 빠른 사람들은 벌써 도토리를 채취하는지 여기저기 잎 달린 가지가 꺾여 있다.

내리막길이다. 잠시 비탈길을 잊고 딴 생각에 그만 미끄러졌다. 정신이 아찔했다. 돌이 없고 흙이 있는 비탈이다. 다행이다. 오른쪽 허벅지에 생채기가 생겼다. 주변에는 사람이 없어 창피는 면하였다. 일어나 흙을 털었으나 진흙이 바지 옆으로 잔뜩 묻어 축축하다. 개구쟁이 바지처럼 되었다. 흙이 묻은 바지를 보면서 100m쯤 지나 작은 장미터널 계단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왼쪽 옆으로 눈길을 옮긴다. 좀 자란 밤버섯이 보인다. 깜짝 놀랐다. 이런 야산에 버섯이 있다는 것이.

장미터널 옆 야산에는 어린 시절 고향 뒷산에서 땄던 버섯이 주변 잡풀 사이에 듬성듬성 여러 곳에 나 있다.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보이는 대로 버섯을 땄다. 왼손바닥에 따서 올려놓으니 금세 가득했다. 더는 손바닥에 놓을 수가 없다. 담을 그릇도 없이 풀 위에 수북이 버섯을 모아 놓았다. 집으로 가져갈 일이 막막했다.

비는 부슬부슬 소리 없이 계속 내린다. 전화도 가져오지 않아 남편을 부를 수도 없고.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 궁리 끝에 가져간 하얀 비닐우산을 거꾸로 들어 그곳에 버섯을 담기로 했다. 우산 바구니,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하얀 비닐우산 안에는 갈색 버섯들이 날 보고 웃는 듯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아침 비를 맞으며 우산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 집을 향했다. 산책하러 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빗길에 우산 속에 버섯을 담아 걸어가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나 보다. 한 지인은 우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쳐다본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자신이 우스웠다. 오른쪽 허벅지가 뻐근하여 발걸음이 불편했다. 신나게 버섯 따던 마음을 비우니 비탈에서 넘어져 생채기 난 곳이 점점 아파왔다.

내가 딴 버섯은 어린 시절 졸깃졸깃하여 매우 맛있게 먹었던 밤버섯이다. 야산에 있는 버섯 중 제일 맛이 있단다. 비 내리는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돋아나는 버섯이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넘어지고 아팠지만 오랜만에 본 버섯으로 고향에 온 기분이다. 60대가 아닌 10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꿈에 그리던 고향, 가까이 있어도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려 사라진 고향이 내 옆에 정겹게 다가온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며 마지노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땐 여러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를 쓴다. 우리 인생살이가 살다 보면 고달플 때가 한두 번만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한 고개를 넘으면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그 평지를 지나다 보면 낭떠러지의 내리막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살아가는 길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 반복되는 것이다. 우연히 딴 버섯을 우산에 담아 집으로 가져올 것을 누가 생각했단 말인가.

종아리가 가렵다. 여러 곳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붉은 자국이 있다. 반바지 차림에 준비 없이 숲에 들어서 풀에 스친 것 같다. 모처럼 남편과 함께 내가 채취해온 버섯으로 맛있게 점심준비를 한다. 추억이 보글보글 끓는다. 찌개 속의 버섯냄새로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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