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4.08.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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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동네가 소란스럽다. 늦은 밤에 고성이 오간다. 집안을 둘러 보았다. 성질 급한 가장이 보이질 않는다.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나를 따라 피곤해 누워있던 작은딸이 싸움장소를 향해 함께 달린다.

서로 밀치며 고함을 지르는 두 남자 옆에서 남편은 싸움을 말리고 있다. 아랫집아저씨는 윗집남자가 자기부인에게 욕을 했다고 따지고 윗집아저씨는 당신네가 사람이냐며 울부짖는데 딸이 친정아버지를 끌어안고 애타게 울고 있다. 나는 부녀의 처절한 심정을 헤아리고 있다.

올봄,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새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아이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이 동네가 마음에 드니 여기서 살고 싶다는 딸의 소원대로 친정아버지는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기까지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허나 땅을 매입하는데까지만 순조로웠다. 집을 지으려하자 아랫집에서의 요구사항이 빈번하였다.

친정아버지는 건강하지 못한 딸이 이 집에 살면서 아랫집과의 관계가 불편해질까봐 부당하다고 생각되어도 말없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고 있었다. 집이 완성되어가자 젊은 부부는 무척 좋아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다소 무리를 했으나 조용한 산마을에서 살다보면 분명 건강해 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집을 지으면서 겪었던 마음고생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이사 온 후 며칠이 지나서 나는 그 집을 방문했었다. 젊은 아이엄마는 행복한 표정과 몸짓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젊은 사람답게 집의 구조와 가구는 세련되어 있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그녀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아랫집에서 현관불이 너무 밝다고 자꾸 뭐라고 하는데 속상해요. 저희는 아이들이 어려서 어두우면 무서워하거든요.” 남의 집 현관불빛이 밝은 게 왜 문제가 되며 아랫집에서 관여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령 거슬린다 해도 아픈 사람이니 조금 양보하면 될 일이었다.

싸움은 현관불빛이 너무 밝다는 이유였다. 아랫집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와 아이엄마에게 듣기 거북하게 말을 한 모양이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친정아버지께 전화를 하니 단숨에 달려왔단다. 살얼음판을 디디는 것처럼 마음 졸이며 건강치 못한 딸을 위해 그동안 꾹꾹 참았는데 아랫집아주머니가 법으로 한다며 기름을 부은 게다.

친정아버지는 그 말에 이성을 잃고 욕을 한 모양이다. 병들어 살자고 온 아이한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타들어가는 애비심정을 생각해봤느냐고 몸부림친다. 어느 아버지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인연이란 얼마나 지중(至重)한 일인가. 언어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나는 안다. 정년지나 다소 주눅들어 있던 아버지도 자식에게는 견고하고 단단한 울타리라는 것을.

사람이 사는데 주위풍경만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싶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세상을 읽는 방식은 사랑이다.

자기의 이득만 챙기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그 영혼은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 살지는 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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