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가격 공개,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첫걸음
자동차부품가격 공개,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첫걸음
  • 권석창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
  • 승인 2014.08.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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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권석창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

여성회사원 A씨는 정비명세서를 보고 꺼림칙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명세서에 부품별 가격과 공임비가 나와 있긴 했지만 비교 기준이 없어 왠지 바가지를 쓴 것만 같았다. 여자라서 잘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과다청구를 한 것 같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자친구와 함께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특히 수입차의 경우에는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국산차에 비해 3배에서 10배에 달하는 고가의 수리비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다. 수입차 가격이 국산차와 비교하여 종전보다 크게 낮아졌음에도 과도한 수리비는 수입차 선택을 꺼리게 만든다. 인터넷에는 이처럼 수리비가 과다청구된 것이 아닌지 묻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동차 부품가격을 알 수 없고 공임비 또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수리비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대에 육박한다. 전 국민이 매일 자동차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의 안전은 곧 운행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곧바로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수리비 과다청구 등 정비업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자동차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운행에 지장이 없는 한 정비를 뒤로 미루기 쉽다. 이러한 현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격이다. 자동차사고는 운전자 본인 뿐 아니라 주위 운전자나 보행자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8월 2일부터 자동차 부품가격 공개가 의무화됐다. 특히 수입차 수리비에서 차지하는 과도한 부품가격 비중을 감안해 환율변동 등을 반영해 분기별로 갱신하도록 했다. 자동차 제작사가 자동차 부품의 소비자 가격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게 됨으로써 소비자는 정비에 사용될 부품가격을 견적서와 비교해 보고 과다청구되는 것은 아닌지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는 공개된 가격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정비를 받을 수 있어 만족하게 되고, 정비업체는 서비스 제공에 걸맞은 적정한 대가를 받음으로써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일단 부품가격 공개만 해도 제작사의 무성의한 공개에 따른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시행상황 등에 대한 한 달간의 모니터링을 통해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필요한 경우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제작사의 보다 친절한 부품가격 공개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부품가격과 함께 수리비용을 구성하는 공임비에 대해서도 주요 정비작업의 시간당 공임과 표준정비시간을 정비업체 사업장에 게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6개 업체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부품가격 공개에 이어 공임비까지 공개될 경우 정비업체나 소비자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던 자동차 수리비가 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은 특별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는 이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자동차 정비서비스는 그 과정과 가격 등이 가장 투명하게 공개돼야 함에도 그동안 불투명하게 운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자동차부품가격 공개는 건전하고 투명한 정비서비스 질서를 확립하고, 정비업계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향상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한걸음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발맞춰 자동차제작사는 소비자 친화적으로 부품가격을 공개하고, 정비업계 역시 합리적인 수리비를 책정한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도 그리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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