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賣血)기
허삼관 매혈(賣血)기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4.08.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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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쓴 ‘허삼과 매혈기(위화 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99년으로 꽤 오래전이지만, 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한 명인 하정우씨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의 원작소설로 알려져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허삼과 매혈기’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책 제목을 보고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부분 “공포물인가요? 무서울 것 같아요”인데, 책을 다 읽은 학생들의 반응은 “재미있어요!”이다.

허삼관은 특별히 도덕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가장 애정을 쏟아왔던 첫째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심한 배신감에 외도를 저지르기도 하고, 외식 자리에 일락이를 데려가지 않는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문화혁명이 마을을 강타했을 때 매춘부로 몰려 곤경에 처한 아내 허옥란에게 식사를 갖다 주면서 자신에게 괜한 불똥이 튈까 두려워 고기 반찬을 밑에 깔고 밥으로 덮어 마치 맨밥을 갖다주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얄팍한 수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평범한 허삼관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피를 파는 것이다. 아내를 맞을 때, 자식이 큰 사고를 쳤을 때, 가족이 많이 아플 때 등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할 때마다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판다.

매혈 이야기의 절정은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매혈 여정이다. 혈연의 인연을 넘어 일락을 자신의 진정한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 허삼관은 큰 병에 걸린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건 매혈의 여정을 떠난다.

‘허삼과 매혈기’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책에 쏙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탄탄한 스토리를 거침없이 읽어낼 수 있는데도 막상 뚜렷한 주제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가 탄탄한 스토리로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는 점 외에 우리가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간과했던 평범한 우리의 삶을 다독이고 있기 때문이다.

격동의 시대,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민초들. 주목받지도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이너들의 삶.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아니 얼마나 어렵고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간과했다. 나의 부모님, 친구들, 이웃들…. 영웅도 아니고 역사에 어떤 큰 업적을 낸 사람도 아니지만,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삶 역시 하나의 단어로 환원될 수 없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하면 된다”를 외치며 남다른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라는 공허한 용기를 심어주기 보다는 “잘 견디고 있는 거야”라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습관화된 패배 의식에 빠진 학생들이 지치지 않고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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