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고통에 대하여
고난과 고통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08.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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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금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고난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고통 없는 세상이 또 어디 있으랴.

돌아보면 고난은 스승이었고, 고통은 친구였다.

이순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는 고난과 고통에게 모처럼 고맙다는 악수를 청한다.

노산 이은상은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조에서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라고 노래했다.

이 시는 지지리도 가난하고 암울했던 내 청춘기에 정신적 자양분이 되어준 시다.

‘그래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포기할 수 없잖아. 그래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는 거야. 고난의 운명을 지고 삶의 능선을 타고 가는 거야’라며 수없이 가슴에 되새기며 질곡과 험로를 헤쳐 왔다.

실패와 좌절에서 다시 일어 설 수 있었고, 상실과 원망과 분노에서 극기할 수 있었다.

때론 고난과 타협하고, 고통에 아부하며 거친 맹골수로를 건넜지만, 그런대로 내 청춘에 후한 점수를 매긴다. ‘괜찮아 그 정도면 잘했어, 고마워’라고.

아무튼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과 더불어 산다.

성자 예수도, 자비로운 부처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 득도했고, 구세주가 되었다.

대통령도, 재벌총수도, 인기스타도, 예술인도, 체육인도 모두 고난과 고통을 딛고 그 자리에 올랐고, 그 자리에 올랐기에 한 차원 높은 고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고난(苦難)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로 고초, 만난, 형극 등이 있다.

고통(苦痛)의 사전적 의미는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다. 유의어로 고초, 곤란, 쓰라림 등이 있다.

이처럼 사전적 의미로 보면 고난과 고통이 유의어가 중첩되는 유사한 말이나, 뿌리가 다르다.

고난이 운명적이고 근원적 개념이라면, 고통은 일시적이고 사후적 개념이다. 그리고 고난이 일이나 과업에 기인한다면, 고통은 육체나 정신에 기인한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설파했다. 인간 세상에 바다처럼 넓고, 깊고, 큰 괴로움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누구든 고난과 고통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명검이 뜨거운 담금질을 통해 만들어지듯이, 사람도 고난과 고통이라는 담금질을 통해 단련되고 거듭난다.

그러므로 비켜갈 수 없는 거라면 가까이 두고 친숙하게 지내야 한다. 어차피 당해야할 고난과 고통이라면 원망하고 아파할게 아니라, 차라리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즐기는 거다.

그러려면 고난과 고통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왜 이런 고난이 내게 주어졌는지, 왜 내게 이런 극심한 고통이 생겼는지, 그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그런 후 그 비밀에 키스하고, 구애를 청해야 한다.

산에 오르면 할딱고개를 만난다. 그 할딱고개를 넘어야 정상에 다다를 수가 있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숨이 목까지 차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그 할딱고개가 바로 등산인들에게 고난이자 고통이다.

평소 등산으로 단련된 이는 그 할딱고개를 보란 듯이 넘고 정상을 밟지만, 페이스조절을 잘못했거나 체력관리를 잘못한 이는 무리하게 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게 바로 할딱고개라는 고난과 고통을 즐긴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다.

산이 높으면 할딱고개도 길고 험하듯, 인생도 목표가 크면 고난과 고통 또한 큰 법, 고난과 고통이 깊을수록 자부하고 감사하라.

그러면 그대도 큰 인물이 되고, 큰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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