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황사영, 유민이 아빠…
김순덕, 황사영, 유민이 아빠…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4.08.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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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솔뫼와 해미, 서소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방문한 성지 세 곳이다. 새남터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들이다.

이곳들과 견줘 손색없는 곳이 국내에 한 군데 더 있다. 충북 제천시 봉양면의 배론(舟論) 성지다.

지형이 배를 뒤집어 놓은 밑바닥 형상을 닮아서 이름 붙여진 이곳은 사제 양성을 위한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된 곳이다. 1855년 문을 열었으나 11년 후 병인박해 때 교장, 교사 신부 등이 모두 순교하며 폐교됐다. 배론은 또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그런 유서깊은 장소인데 교황은 아쉽게도 배론에 오지 않았다. 지난 16일 이곳과 지척인 충북 음성의 꽃동네까지 헬기를 타고 온 교황이 지척에 있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2시간 정도면 가능했을 텐데 방문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실학의 거두 정약용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은 배론으로 피신했다가 신유박해 소식을 듣고 명주에다 편지를 쓴다. 중국에 있는 프랑스인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이게 그 유명한 백서(帛書·비단에 쓴 편지)다.

편지는 당시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실상을 전하고 난국을 타개하고자 중국천주교와 바티칸에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황사영의 편지에는 조선 조정이 화들짝 놀랄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신유박해 등 조선 조정의 천주교 탄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조선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방안을 제시했다.

‘조선을 청나라에 편입’시켜 천주교를 받아들이도록 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에 5만여명의 군대와 신부들을 태워 조선 해안가에서 무력시위를 해 조선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등의 요구였다.

미처 편지가 채 전달되기 전에 관군에 압수돼 중국에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조선 조정에서 볼 때는 그의 주장이 역모에 다름없었다.

예상하건대 교황의 방문지에서 배론이 제외된 것은 이러한 백서의 내용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천주교는 이번 시복식에서 황사영을 복자(福者) 반열에 올리려 했으나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한마디로 바티칸이 ‘국가 전복을 꾀한 인물의’ 복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아무리 포교 활동이었다지만, ‘나라를 팔아먹고(조선을 중국에 편입), 대포와 총칼로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백서 사건이 발생한 지 231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황사영이 바티칸에 편지를 썼듯이 이번엔 세월호 유족들이 편지를 교황에게 전했다. 다른 점이라면 요구 사항이 신앙의 자유에서 진실의 규명으로 바뀌었다는 것.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씨와 세월호 유족들은 편지에서 교황에게 ‘유족들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종교 탄압을 빌미로 숱한 인명을 해친 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외세의 개입을 요청했던 황사영, 그리고 정부를 믿지 못해 죽음을 불사한 단식투쟁을 하며 교황에게 편지를 전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문득 전 여자 국가대표 하키 선수 김순덕씨가 생각난다. 그는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로 유치원생 아들을 잃은 뒤 정부의 졸속 대응에 실망해 국가가 준 훈장을 반납했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김씨와 황사영, 세월호 유족들이 ‘오버랩’되는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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