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
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
  •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08.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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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몇 날을 망설인 끝에 이 글을 쓴다.

평생 자식밖에 모르고 살았던 어느 시어머니가 손주 잘못 본 죄로 며느리에게 뺨을 맞았다.

설거지를 하느라 잠깐 눈 돌린 사이에 돌보던 손주 녀석이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찧어 피가 났고, 병원에 갔다. 연락받고 달려온 며느리가 애를 어떻게 봤기에 이 모양이 되었냐고 놀란 가슴 추스르고 있는 시어머니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창졸지간에 뺨을 맞은 시어머니는 너무나 분하고 속상해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뒤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눈물로 이 사실을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듣던 아들이 대뜸 ‘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라고 핀잔을 주고는 제 자식한테 가더란다.

아들에게 위안받고 싶었던 모정은 참담했고, 창피했고, 죽고 싶었다.

‘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라는 아들의 말은 며느리한테 뺨 맞은 것보다 더 깊게 비수로 꽂혔고, 공황상태에 빠진 엄마는 더 이상 자식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동네 사람 보기도 부끄러웠던 엄마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부랴부랴 남은 가산을 처분해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아주 멀리 떠나고 말았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지워버리고 싶지만,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 일어났던 실화이다.

엄마는 어머니의 애칭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보다 더 정감있고, 금방 쪄낸 찐빵처럼 따끈함이 묻어있다.

그렇다. 낳아 주고, 길러주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모태이자 원천이 바로 우리들 모두의 엄마다.

그 엄마가 요즘 수난을 받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수난이 바로 손주 보는 일이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이다 보니 자식이 아이를 낳으면 친손주든 외손주든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힘닿는 대로 돌봐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손주 보는 보람보다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데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두 명 낳아 키우는 세태이고 보니,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상전 모시듯 돌봐야 하니, 자녀를 서너 명씩 키워본 노하우가 있어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기다가 며느리나 딸들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용돈 몇 푼 드린다고 안하무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손주 보다가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손주 보다가 자식도 잃고, 자신의 목숨조차 잃는 비극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에 박제된 지 오래인 효도란 말은 굳이 꺼내지 않겠다.

아무리 엄마가 잘못했다손 치더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패륜은 없어야 한다.

더더욱 ‘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라고 망언을 하는 불효막심한 못된 아들이 이 땅에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되고, 마누라 눈치보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시어머니 뺨을 때린 며느리의 말로와, ‘엄마가 맞을 짓을 했네’라며 아내 편을 든 아들의 말로가 결코 좋을 리 없다. 악덕은 반드시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게 세상 이치다.

이 모든 게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윤리교육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니, 기본으로 돌아가 인간의 기본 윤리를 복원해야 한다.

이제 국가와 지자체가 육아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최소한 육아문제로 가족이 해체되고 박살나는 비극이 없도록 양질의 영유아 보육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할머니들이 가끔씩 우리 손주 잘 놀고 있나 보러 어린이집에 가거나, 휴일 날 같이 놀아주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땅의 엄마여 의기소침하지 마시라. 당신들은 여전히 위대하고, 여전히 숭고하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여, 우리 모두의 어머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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