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4.08.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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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권익위원칼럼

하은아 <중앙도서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똑같은 일상인 것 같지만 그래도 미묘하게 조금이라도 다른 하루하루가 계속 된다.

그런 일상 속에서 어쩌면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은 무얼 먹지?’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도서관 식당에서 먹을 것인지, 밖으로 나갈 것인지 말이다. 한 달 치 식단이 짜여 진 도서관 식당은 이런 고민의 싹을 애초에 없애주며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길거리에 많은 식당들의 유혹에 매번 흔들린다.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 때가 되면 으레 찾던 곳이 도서관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후에 도서관에서 일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도서관 식당은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다양하지 않았다. 우동과 쫄면 그리고 컵라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는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것이 아니면 언덕길을 다시 한 번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했다. 늘 골랐던 메뉴는 쫄면이었다. 싼 가격이지만 푸짐하게 양배추가 들어있고 늘 남길 정도의 양이었다. 맵지만 달콤한 빨간 고추장 소스, 얼얼한 입을 달래주는 단무지, 아삭거리는 양배추가 나름 일품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진 메뉴지만 그 시절 천 원도 안되는 가격에 나름 행복했던 점심식사였다. 도서관에서 밥을 먹을 때면 그 쫄면이 그립고 아쉽다.

이렇게 맛과 먹을거리가 내 기억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박찬일 저, 푸른숲)이다.

이 책은 맛과 추억에 관한 쫄깃한 글들을 담고 있다. 음식 사진 한 장 없는 책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입맛을 다신다. 그 만큼 생생하다. 풍경이 그려지고 눈앞에 한상 차려진 듯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허기가 진다.

대가족 식구들이 여름에 보양식으로 먹던 삼계탕의 그 맛을 이야기 할 때는 재래시장 모습과 비릿한 냄새가 나는 닭 잡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재생된다. 자장면은 허름하고 기름에 찌든 식탁과 먼지 낀 선풍기가 돌아가는 그런 식당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저자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어우러져 갖가지 음식에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전직 저널리스트였던 저자가 요리를 배우고 요리사가 됐다. 저자는 맛에 깃든 자신의 추억을 하나의 완성된 단품 요리처럼 글을 그려 놓았다. 노란색 책 표지 속이 궁금하여 들여다보면 군침 도는 사진은 없어도 담백함이 으뜸인 글이 반긴다.

‘오늘은 무얼 먹지?’라는 또 다른 고민을 하는 하루가 시작됐다. 푸른 등껍질이 바삭하게 구어 진 고등어구이를 먹어야겠다. 누구와 먹든지 오늘의 고등어구이는 사람과 시간이 보태져 새로운 고등어구이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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