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시절인연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8.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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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만날 인연이 있는 사람은 지하철에서 지나쳐도 거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헤어져야 할 인연인 사람은 길목을 지키고 서 있어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최근 여자 친구와 헤어진 회사 직원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젊은 시절 연애하면서 많은 이들이 한번쯤 느꼈던 감정이라 나 또한 공감하며 웃었다. 불교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시기가 있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잊지 못할 인연을 종종 만난다. 스쳐지나가듯 만났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 만났던 지인은 20여 년 전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한 노신사를 만났다 한다. 그분은 해뜨기 전에 일어나 해를 맞이하며 평생을 살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에 감동받아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지금까지 해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고 산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계획하고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야기 했다. 평생 단 한번 한시간여를 만났던 사람인데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생활방식을 바꾸었던 것이다.

얼마 전 독일에서 공부하던 큰아이가 귀국을 했다. 큰아이 역시 독일에서 만난 송은실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배가 맡겨 놓은 짐을 찾으러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한다. 내가 불교 신자라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믿게 되었다. 출국하기 전에 염주와 다라니경을 주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의지하라고 보냈다. 그런터라 일요일마다 교회에 오라는 목사님의 얘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불교 신자라 얘기 했더니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느 종교든지, 어떤 신을 믿던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불편함을 덜어 줬다고 했다. 그리고 예배시간이 끝난 후 사람을 보내 같이 밥을 먹었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뭘 좋아했느냐 묻고 그 다음 주에 말없이 음식을 만들어 줘서 감동을 받았다 한다. 그것뿐 아니라 항상 유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희망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여서 후회를 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옳은 것은 옳다 라고 말 할 수 있고,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하며 “자기 것만 챙기려 하지 말고 조금씩은 남을 돌아보며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아이가 독일에 있는 일 년 동안 병원에도 같이 가주고 통역이 필요할 땐 통역사도 되어 주어 덕분에 잘 있다 왔노라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는 날에도 목사님 집에서 아침밥을 먹었고, 헤어지며 많이 울었다면서 아이는 앞으로 어떤 것이든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종교를 초월해서 목사님처럼 자기를 필요로 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그 목사님 얘기를 했다. 일 년 동안 성숙해서 돌아온 아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그 곳에 가서 좋은 인연을 맺고 온 아이에게 시절인연이란 말을 떠올렸다. 변덕스럽지 않고 한결 같은 인품의 향을 가진 인연을 만났으니 우리 아이도 평생 그 향기 속에 살지 않을까 싶다. 수레바퀴의 삶속에서 언젠가는 우리아이도 또 다른 누구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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