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라비난초
해오라비난초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8.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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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여름 장마가 지난 후 해오라비난초가 청초하게 피었다. 비에 젖는 것이 안쓰러워 뜰 안으로 들인다. 앙증스러운 꽃이 새가 날아가는 것 같다. 하얀 날개를 활짝 펴고 아홉마리의 하얀 새가 내게 안긴다. 이 고운 모습 그대로 있으면 좋으련만. 스마트폰 화면과 마음에 담는다.

몇 년 전에 해오라비난초 7개의 구근을 들꽃마을에서 구입해 키우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한번 키운 경험이 있어 다시 키워보고 싶었다. 가을에 마사와 부엽토를 적당히 섞어 철쭉아래 낙엽을 덮고 겨울준비를 했다. 워낙 구근이 작아서 관리가 그리 쉽진 않았다. 그래도 한번 나와 함께 했기에 겁 없이 추운 겨울을 마당에서 지내도록 했다.

올 4월 나무밑에 낙엽으로 덮여있던 그 화분을 마당으로 꺼내 놓았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마사 틈새에서 초록의 아주 작디작은 싹이 돋아났다. 여름이 가까워 오며 꼿꼿한 꽃대를 올렸다. 분갈이 할 때 부엽토를 제대로 섞지 못해 꽃송이가 한 송이씩만 피었다. 고결한 모습이 보는 이의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한다.

해오라비난초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은 남편이다. 지난해 한번 보았으니 더 기다리는 것 같다. 남편은 유독 하얀 꽃을 좋아한다. 지난 봄에도 흰마가랫을 사다 심었는데 해오라비난초도 역시 흰색이다. 워낙 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꽃은 흰색 꽃인 듯싶다. 주변의 어느 빛깔을 다 품을 수 있으니 그렇지 않을까. 해오라비난초 꽃이 피자 남편은 먼저 곁으로 다가가 눈 맞춤을 한다. 해오라비난초 하얀 꽃은 마치 곱게 단장한 5월의 순결한 신부 같다.

남편은 그 꽃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카톡 밴드에 올렸다. 잠시 후 지인 몇 사람이 사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본 꽃이다’ ‘하얀 새가 날아가는 것 같다’ ‘키운 사람의 정성이 엿보인다’ 등등. ‘카톡’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여러 사연들이 분주히 올라왔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올린 것인데 지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남편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웃음 가득한 남편의 얼굴에도 꽃이 피었다.

해오라비 난초는 ‘해오라비(기) + 난초’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꽃 모양이 해오라비(기)가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꽃말은 무엇일까 여기 저기 검색해 보니 ‘꿈속에서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였다. 마음이 얼마나 담겼으면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까지 애절하게 갈망하는 것일까. 하긴 누구나 그 꽃 핀 모습을 한번 보면 그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맨 처음 그 꽃을 구입할 땐 들꽃으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보기까지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났다.

들꽃은 제자리에 자연 그대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곁에 두면서 보길 원하고 더 나아가서 기르는 수고 없이 핀 꽃만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늘 내가 꽃과 함께 생활하며 터득한 것은 기다림과 돌봄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듯 그들을 볼보고 가꾸지 않으면 자연이 아닌 인공에선 해가 거듭되면서 서서히 도태되고 만다. 그러나 자연은 어떠한가. 물을 주지 않고 돌보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 적응하여 말없이 살아간다.

요즘 사람들은 빠름을 추구하고 느림을 멀리하며 메마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청초한 해오라비난초처럼 맑은 샘물 같은 눈을 맑히는 하루가 가을을 기다리는 내게 희망의 속삭임으로 다가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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