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기보다 어떻게 보내나 … '노년 설계' 필요
오래 살기보다 어떻게 보내나 … '노년 설계' 필요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4.08.13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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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대에게 100세 시대를 묻다
◇ 장수(長壽)가 리스크가 된 시대

고독·무직·건강 악화·재정적 곤란 '리스크'로
30~69세 43.3% "90세 넘기는 것 축복 아냐"

청주의 낮 기온이 최고 35.2도까지 치솟았던 지난달 30일. 가만히 서 있어도 등에서 땀이 쏟아지도록 무더웠지만, 조그만 유모차를 밀고다니는 김모 할머니(74·운천신봉동)의 폐지줍기는 계속됐다.

“한 낮은 피해 일하시라”는 기자의 걱정스러운 말에 할머니는 ‘어서 갈길 가라’는 듯 손짓으로 답했다. 한 달 9만원의 노령연금만 받고 사는 김 할머니에겐 폐지 줍기는 중요한 생계수단인 탓이다.

그나마 지난달부터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제도의 시행되면서 혜택을 받게 된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김 할머니가 온종일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모은 폐지로 버는 돈은 하루 5000원을 넘지 못한다.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리어카를 끌고다니면 그나마 벌이가 낫겠지만, 근력이 부족해 유모차에 만족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도 김 할머니는 자기 보다 못한 노인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김 할머니는 “내가 박스나 줍는다고 우습게 보지 말어. 그래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잖여. 돈도 없는데다 몸도 아파서 죽도 못하고 사는 노인네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손가락을 꼽았다.

이처럼 인생의 오복 중의 으뜸인 장수도 재정적 뒷받침이나 가족간의 화목이 없으면 재앙이 될 수 있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3.3%는 90~100세를 넘겨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고 답했다. 축복이라는 답변은 28.7%에 그쳤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는 의외의 대답이다. 이제는 장수가 리스크인 시대가 된 셈이다.

노 부부가 아들 앞으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가 하면 부모부양 문제를 두고 형제 간에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이기도 한다.

장수리스크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고독한 것, 직업이 없는 것, 건강이 좋지 않은 것, 재정적으로 곤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노후에는 취업이 어렵고 수입이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지출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노후를 빈곤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 열명의 효자보다 중요한 건 소일거리

65세 이상 고령자 57.1% "향후 취업 희망"
이유 … 생활비 > 일하는 즐거움 > 무료해서 順

노인들이 일자리를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만 벌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생활비가 노후생활의 큰 몫을 차지하지만 노년기에 적절한 일자리는 여가 보내기와 심리적 고립, 소외의 문제를 풀 수 있다. 지난 2008년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 중 향후 취업 희망자의 비율은 57.1%였으며, 이들의 주된 취업희망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어서’(31.2%)가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일하는 즐거움’(20.6%), ‘무료해서’(3.0%) 등이 차지했다.

실제로 청주 사직동에 사는 이모 할아버지(72)는 10년 넘게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젊은시절 성안길에서 분식점을 운영했던 이 할아버지는 10여년전 1남 3녀의 자식들이 분가한 후 자기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 가게문을 닫았다. 크지는 않지만 어엿한 양옥집을 가지고 있는데다 모아놓은 여윳돈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일을 그만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후회해야만 했다. 쉬면 좋기만 할 줄 알았던 삶이 적적함을 넘어 외로움으로 다가 왔다. 평생 일만해 온 이 할아버지로서는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나 친구도 없었다. 그저 함께 일하다가 쉬고 있는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집안팎을 둘러보는 게 일과였다. 그렇다고 다시 장사를 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자신이 가게를 하던 점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집에만 있는 것은 답답해서 안되겠다며 식당에 취업하면서 이 할아버지의 일상은 더욱 외로워졌다. 이 할아버지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자를 찾아나섰지만 결국 자격증 하나 없는 할아버지가 일할 곳은 없었다. 그렇게 산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 할아버지는 “요즘은 사는 재미가 없어. 자식들하고 손주들이 찾아오는 명절이나 집안이 북적북적하지 나머지는 외로움 그 자체야. 그렇다고 어려운 노인네들이 가는 복지관 같은데 가서 밥을 축낼 수도 없고…. 늙어서 할 일을 미리 찾아뒀어야 하는데 그게 안타까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노년을 설계하라

노인 대부분 소일거리·여가 없어 무료한 나날
도시 거주 일수록 행복지수 … '귀촌' 고민도

보험설계사 김모씨(50·청주시 봉명동)은 요즘 귀촌을 고민하고 있다. 노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시골에 사는 자기 어머니(78) 이야기를 꺼냈다. 젊어서부터 일만해온 어머니를 항상 불쌍하게 봐왔는데 요즘은 가장 부러운 노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보험설계사라는 직업때문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사는데 도시에 거주하는 노인들 중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 적었다는 것이다. 번듯한 가게를 가지고 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노인, 전직 공무원으로 은퇴후 연금혜택을 충분히 받는 사람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무료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괴산에 사는 자기 어머니는 큰형님 내외와 농삿일을 하면서 나름의 활력을 가지고 사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인단다. 도회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고추, 참깨, 들깨 등을 심고 식사때면 큰아들 내외와 손주 둘까지 함께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며 노년을 보낸다. 김씨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의 노후준비가 잘 돼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귀촌이다. 도시보다 생활비도 적게 들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소일거리가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옛 청원군청에서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강모 할아버지(73·청주시 우암동)의 사정도 비슷하다. 동네에서 200만원을 훌쩍 넘는 연금을 받으면서 간혹 골프를 치러 다니는 행복한 사람으로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강 할아버지의 말이다. ‘자동차까지 사주는 효자 자식들이 있어 행복하겠다’는 주변의 시샘어린 말도 한달의 대부분을 무료한 시간으로 보내는 강 할아버지의 행복지수까지 높이지는 못한다.

강 할아버지는 “가끔 봉사활동도 다니고, 해외여행과 등산도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라며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이나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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