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뜨거움 … 치열한 삶의 현장서 나를 깨우다
존재의 뜨거움 … 치열한 삶의 현장서 나를 깨우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08.13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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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초원에서 대한민국 초원을 묻다
일교차 80 버리진 사막 도룬 고비캠프 도착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장소에서 만난 생명들

기름진 옥토·물 … 풍요로움에 함몰된 현대인들
문명이라는 허울·익명에 가려졌던 자아를 찾다

멀리서 별똥별 소식이 들려온 뒤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내 안의 깊숙한 곳에 닿은 그 바람은 다시 초원의 바람으로 내달리며 끝내 몽골행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그렇게 8월의 뜨거운 한국을 떠나 3시간 후에 닿은 몽골의 서울 울란바트로는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한국의 1970년대 풍경을 보는 듯 곳곳이 건설현장으로 변해버린 울란바트로를 뒤로 하고 고비사막으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다. 한때 낙타를 앞세워 동서양이 문물을 주고받던 비단길은 철로라는 이름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돌며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쇠를 가르는 묵직한 열차 음이 고비사막으로의 출발을 알렸다. 척컥 척컥 느린 열차 바퀴의 리듬이 몸으로 전달되어 오고, 차창 밖으로는 광활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며 지나갔다. 그렇게 10시간을 달려온 기차는 사막의 입구로 통하는 샤인샨드 마을에 정차하고, 그곳에서 다시 1시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 뒤에야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도룬 고비 캠프에 도착했다.

사막을 비추던 태양이 어둠에 밀려나자 적막한 고요가 그곳을 가득 채웠다. 먹빛으로 짙어가는 하늘엔 손톱 같은 초승달이 떠오르고, 별들은 흩어진 구슬처럼 돋아나 촘촘히 박혔다. 이따금 눈앞에서 꼬리 달린 별이 사선을 그으며 지나가면 지구가 도는 소리도 바람결에 묻어왔다. 문명사회에서 묻어온 낯선 언어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우주의 미아가 되었다. 사막은 오직 하늘과 땅과 내가 온전한 공간 속에서 대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사막의 아침은 황량하다. 메마른 대지가 푸석하게 맨살을 드러내고, 척박한 대지는 풀 한 포기조차 하늘의 허락 없이는 키울 수 없음을 경고한다.

영상 40도와 영하 40도로 80도의 격차가 반복되는 이 땅은 살아남는 자만이 살게 하고 죽는 자는 죽게 하는, 혹독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들에겐 실패만 있음을 가르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키 작은 나무조차 허하지 않는 물기 없는 땅,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신의 장소처럼 버려진 사막, 숨통처럼 옹달샘 하나 달랑 허락한 삶터가 바로 이곳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은 소유하고 살고 있는가. 기름진 옥토와 물, 풍부한 물질을 각자가 누리고, 자동차와 핸드폰 등 문명의 이기물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늘 갈증에 목말라 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쫓기듯 앞만 보며 살아가고 있다. 최고가 되고자 타인을 끌어내리고, 많은 것을 갖으려고 서슴치 않고 양심을 내려놓는다.

허상에 매달려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채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지금이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현재는 이처럼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절망 속에 희망을 품은 고비사막에서 길을 되묻는다.

바람이 분다. 상흔처럼 패인 대지에는 낮게 자란 풀들이 바람의 길을 따라 더 낮게 눕는다. 그 풍경 속에 나를 놓아둔다. 과연 이 땅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그곳에서 낮은 자세로 길게 뿌리내린 하얀 메꽃을 만났다. 분홍 부추꽃과 노란 민들레를 만났다. 소똥을 굴리며 사막을 건너는 소똥구리를 만났고, 붉은 숨을 쉬는 긴꼬리도마뱀을 만났다.

뭇 생명의 사투가 하루하루 뜨겁게 이어지는 자리임을 확인하는 순간, 너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존재의 뜨거움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문명이라는 허울과 익명 속에서 기계부품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비루한 일상인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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