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쉼표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4.08.1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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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수필가>

악보에서 음이 멈추는 동안의 길이를 나타내는 부호는 쉼표다. 그것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래에 쉼표가 있는 것처럼 삶에서도 쉼표가 필요하다.

여름은 어느새 8월 중순으로 치닫고 있다. 8월은 순우리말로 타오름달이라고 한다. 하늘에선 해가, 땅 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이기 때문이다.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날은 무덥고 세상살이가 팍팍하여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일상을 탈출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인가. 피서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그곳’ 풍경이 그리워진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여름이었다. 더위를 피해 그곳을 찾았을 때는 산천이 온통 초록으로 물든 8월이었다. 대관령을 넘어 도착한 강원도 계곡은 주변의 풍광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펜션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객실 안이 왠지 허전하고 낯설었다. 생활필수품인 텔레비전이며 컴퓨터, 침대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고 대신 방 한켠에 아담하게 지어진 황토방(흙집)이 있었다. 그 상황은 펜션주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온갖 소음과 전자파에서 자유로워져 편안한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곳에선 핸드폰도 소음이었다. 신경 쓰이던 핸드폰도 자연스레 손에서 내려놓았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밤이면 열어놓은 창으로 달빛과 별빛이 놀러오고 청량한 계곡 물소리와 풀벌레소리가 들려왔다. 갑갑한 도시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랄까. 가슴 가득 평화가 밀려드는 것 같았다. 또 황토방에서의 단잠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했다. 낮이면 숲속 계곡물에 발 담그고 책을 읽었다. 흐르는 물소리에 눈과 귀가 맑아져 소란스럽던 마음은 고요해지고 헛된 욕망이 씻겨 내리는 듯했다.

눈만 뜨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 매일 초록빛이 지천인 풍경을 바라다보면 차가운 심장에 훈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내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한없이 가벼워진다.

이렇듯 자연과 더불어 웃자란 내 마음처럼 머지않아 여름의 생명들도 더 힘차게 뻗어나갈 것이고 산천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갈 것이다. 겨울이 노쇠한 노인이라면 여름은 정열적인 젊은이의 모습이다. 그곳 피서지에서 자연 속에 묻혀있던 날이 참 행복했다.

돌아보면 내게도 여름처럼 뜨거웠던 날들이 있었다. 양보보다 내 주장을 팽팽하게 내세우고, 남보다 더 많이 채우려고 욕심도 부렸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끝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이 성공의 길인 줄 알았었다.

살아가노라면 얼마나 많은 세파에 시달려야 하는가. 숨 가쁘게 빠른 도시의 삶에서, 또 번잡한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것이 쉼표를 찍어야 할 이유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내려놓는데 있음을 그 여름은 내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다시 뜨거운 여름이 오면 일탈을 꿈꿀 것이다. 그리곤 지난여름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보리라. 8월의 태양이 연신 보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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