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그린 그림(2)
소리로 그린 그림(2)
  •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4.08.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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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운보미술관에는 운보와 우향의 작품 다수가 전시되어 있다. 자유신문 기자 시절 월남전에서 그린「종군스케치」. 「화조도」는 부부 합작품으로 목단 그림은 우향이 그리고 새는 운보가 그렸다고 한다. 청록산수와 바보산수로 대표되는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운보는 평소 “바보란 덜 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고 종이에 적곤 했다.

월북 작가인 운보의 동생 김기만의 작품「태양을 따르는 한 마음」도 전시되어 있다. 운보는 그리워하던 동생 김기만을 남북2차 상봉 때 만나러 갔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의 도움으로 잠시 의식을 회복하고 동생을 만나고 돌아 왔다고 한다.

우리가 또 운보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만원권 화폐에서다. 1975년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초상화를 그린 운보는 지금 없지만 아직도 서민들의 지갑을 차지하고 있다. 운보는 화가였지만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운보의 집’을 세워 청각장애인에게 도자기 굽는 법을 가르치고 한국 청각 장애인 복지회 설립에도 앞장섰던 분이다. 운보야말로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일생을 사셨던 분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4년 결전미술전에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받은 ‘적진육박’을 그렸다는 이유로 운보는 친일 시비에 휘말렸다. 그런가하면 또 그의 작품이 1999년 ‘옷 로비사건’ 당시 로비용으로 사용됐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운보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였으며,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하루에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국 화단에 큰 획을 그은 대가(大家)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의 화풍은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으로 힘차고 동적인 작품이라는 평이다. 또 풍속화에서부터 형태의 대담한 왜곡을 거쳐 극단적인 추상에 이르기까지, 구상과 추상의 전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작가적 역량을 구사했다고도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서양 화단에서는 예술성과 희소성을 감안해서 우향의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운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처한 장애와 환경을 극복해가는 불굴의 의지이며, 두 번째는 그칠 줄 모르는 정열과 창조적 에너지로 인한 다양한 경향의 창출이다. 세 번째는「바보산수」에서 샘솟는 한국 미술의 전통성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그 현대적인 재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자연주의적 사상과 대범성 그리고 해학적 성정을 들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힐링하기 좋은 운보의 집을 찾는 관광객들은 홍보도 되지 않고 관리가 허술한 점을 토로한다. 주변 관광지와 아울러 연계 관광지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냥 묻히기에는 아까운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운보(雲甫), 그는 들리지 않는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소리로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닐까. 그는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빨간 양말과 흰 고무신을 신고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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