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
비와 당신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8.0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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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아픔으로 감지하는 엄마의 하늘 소식이 또 적중했다. 오늘 아침, 햇살이 처마 끝에 부딪혀 노랗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삭신 타령을 하셨다. 이렇게 쨍쨍한데 설마 설마 하며 엄마가 전해주는 비 예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점심을 지나자 빛나던 태양은 간데없고 비가 솔솔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퇴색하지 않는 지난날의 아픈 사연과 함께 삭신의 아픔을 토해 놓으셨다. 난 골백번도 더 들은 소싯적 얘기를 노래처럼 들으며 역시 엄마는 하늘의 전령사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뼈마디 아픔보다 더 진한 가슴 속의 아픔에 귀를 열어 놓은 채 여기저기 주물러 드렸다.

오후 내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비가 왔다. 나는 망연히 창밖으로 난 세상을 쳐다보다가 우산으로 빗줄기를 꺾으며 마당으로 나갔다. 날궂이 하는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데 정신 나간 년 마냥 어딜 나가냐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길을 나섰다. 마당 입구에 있는 백구도 빗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말리는 듯 컹컹거리며 짖어대고 있었다. 엄마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빗줄기를 한눈에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곳을 생각했다. 퍼뜩 떠오른 장소는 벽골제였다. 벽골제란 벽골의 둑이라는 뜻이며 벽골은 벼의 고을이라는 의미로 김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그곳은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3대 저수지로, 너른 평야와 지평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엄마를 보러 올 때면 가끔 들러 푸른 벌판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가는 곳이다. 오늘은 그곳에서 부유하는 내 영혼의 허기를 빗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이십여 분을 달려 벽골제에 다다랐다. 우산에 부딪히며 커다랗게 확대되는 빗소리가 좋았다. 비가 떨어지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명인학당을 스치고 짚풀 공방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생태연못의 다리 위에서도 미소 한방을 날리고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 보았다. 한참을 빗속을 더듬다가 잠시 정자에 앉았다. 풀잎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비에 온몸을 적시며 초록의 몸짓으로 화답하고, 키 큰 나무들은 가지를 흔들며 하늘에서 온 손님을 반기는 듯했다. 연못은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를 맞아 동그란 파문을 여기저기 그려내며 희뿌연 안개 같은 미소를 피어 올리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정리하여 걸었다.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거대한 쌍용 앞에서 우산을 얼굴과 어깨 사이에 끼고 어설프게 셀카를 찍자 지나가던 사람이 찍어준다며 다가왔다. 멋쩍게 웃으며 비요일의 풍경에 나를 살짝 끼워 넣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단야루를 지나 단야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야각 앞에는 단야에 얽힌 설화가 적혀 있었다. 신라 원성왕 때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되어 아버지의 살인을 막고 벽골제 보수공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설화를 읽고 나니 그저 스치듯 지나쳤던 쌍용이 다시 보였고 설핏 보았던 단야각과 단야루가 새롭게 다가왔다. 설화를 배경으로 그린 듯한 착하게 생긴 단야의 얼굴을 보며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 가득 아리고 아리게 번졌다. 단야처럼 목숨을 바치진 못해도 선녀 같은 우리 엄마를 위해 마음만은 바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빨리 엄마 곁으로 가서 삭신의 아픔보다 더 아픈 지난 세월의 아픔도 꾹꾹 마음을 다해 만져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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