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년 역사의 타임캡슐, 점말 동굴을 아시나요?
수만년 역사의 타임캡슐, 점말 동굴을 아시나요?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14.08.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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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제천 점말동굴은 남한에서 발견된 첫 번째 구석기 유적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점말동굴 발견으로 한반도의 구석기 역사가 쓰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 당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한국에 일본보다 오래된 유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학계는 그 사실을 외면하였고 결국 제대로 연구조차 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북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고, 이어서 남한 지역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는데, 그 시작이 바로 제천 점말동굴이었던 것이다.

점말동굴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각 퇴적 층위가 구분되어 있고, 층 별로 털코뿔이·동굴곰·짧은 꼬리 원숭이 등 동물화석과 함께 석기·뼈연모·예술품 및 식물화석 등 풍부한 고고학적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기후 환경과 생활상, 기술의 발달과정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인의 손가락 마디뼈 화석도 발견되어 시대 편년과 선사시대 생활상 연구의 기준이 되어 더없이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6만6000년 전의 중기구석기 층에서 발견된 털코뿔이 앞다리 뼈에 새겨진 ‘사람얼굴모양조각’이다. 이 모양을 사람이 의도적으로 직접 새긴 ‘그림’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우연히 새겨진 것을 현대인이 억지로 해석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 논란이 있어 결말이 나지 않았으나, 전자에 따르면 이 뼈 조각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린 그림’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점말 동굴의 중앙 입구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자가 빼곡하게 새겨진 면을 볼 수 있다. 중앙 입구 뿐 아니라 그 옆의 굴 천장 부근에도 역시 한자가 새겨진 면이 보인다. 도대체 언제, 누가 새겨 넣은 글일까? 글을 분석해 보면 교육과 의례를 담당하던 신라의 관청인 ‘예부’라는 명칭도 보이며, 화랑세기에 등장한 화랑 및 낭도의 이름, 울산의 천전리 각석에도 등장하는 신라 화랑인 ‘금랑’의 이름도 보인다. 특히 ‘행(行)’자가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는 점말동굴이 신라 화랑들의 수련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탄생불상이 동굴 앞 광장에서 발견되었다. 이곳 바위 병풍을 끼고 절이 세워졌던 것이다. 길이 10미터가 조금 넘는 이 용굴 들은 옛 선승들이 참선하는 장소는 아니었을까? 현재까지 남아있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절경을 자랑하는 사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구석기부터 신라 화랑도와 불교 유물까지, 어느새 사찰은 무너졌고 화랑들의 기합 소리도 잊혀졌으며 최초의 주인은 땅속에 파묻혔다. 바위병풍 아래 공터만 덩그러니 남아 수풀만 무성한 지금의 모습에 점말 동굴에서 자취만 남은 발자국을 보며, 수만년의 역사를 지켜본 점말 동굴과 인생의 유한함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관계자에 따르면 제천 시청에서 점말 동굴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새로이 선사시대 현장 체험학습에 활용될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점말 동굴이 내일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으로 멋지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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