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텃밭
친구의 텃밭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8.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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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아스팔트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날이 갈수록 더하다. 숨 막히는 더위는 대부분 실내에서 선풍기의 몫이다. 이런 날 발길을 자연 속으로 옮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궁금하다. 친구를 통해 말로만 듣던 곳, 그곳을 도시에서 시 외곽 푸르름속으로 눈길을 옮겼다.

도심을 빠져나와 여름의 푸름 속으로 몸과 마음, 눈과 귀 모두를 초록 속에 던진다. 흐르는 땀을 초록 바람으로 씻고, 눈엔 초록 물결을 담고, 귀는 산새 소리와 초록 바람으로 가득 채운다. 잠시만 도시를 벗어나도 이렇게 좋은 자연이 있는데 신이 주신 그 자연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여유 없이 사는 삶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도시를 벗어나자 푸른 하늘과 산이 모두 내 것이다. 금세 부자다. 보는 순간마다 마음이 풍요로우니 그 모든 것, 자연의 주인이 된다. 기분이 상쾌하다. 친구와 함께 연신 자연을 예찬하며 시골길을 따라가니 전원주택 부지를 닦아놓은 빈 터들이 보인다. 뒤로는 소나무가 줄지어 병풍처럼 펼쳐지고, 넓은 하늘과 낮은 앞산이 눈앞에 편안히 안긴다.

그 집터, 친구가 몇 년 전에 준비한 전원 주택지다. 990㎡가 좀 넘는 그곳엔 정년퇴직 후 두 부부가 틈틈이 일군 친환경 밭이 유아들의 어설픈 그림처럼 황톳빛 터에 펼쳐져 있다. 고구마, 들깨, 고추, 상추, 도라지, 더덕, 가지, 부추 볼수록 신기하다. 맑은 공기와 공해가 없음인지 푸성귀들이 모두 깨끗하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맑은 이슬을 맞으며 자란 것. 볼수록 정이 간다. 두 부부가 모두 교직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다 처음 시도해보는 자연과의 교감이란다. 채소 씨앗을 뿌려 나름대로 줄 맞추어 심었다. 도라지는 씨앗이 덜 나서 빈 곳이 보인다.

친구와 함께 정성들여 가꾼 상추를 뜯으며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 어린 시절 소꿉동무이기에 더 많은 이야기가 여름 하늘 아래 오순도순 오간다. 이렇게 노년에 접어들며 곁에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상추 잎을 뜯을 때마다 우리 이야기는 겹겹이 쌓인다. 하얀 진액이 연둣빛 상추잎 끝에 서린다. 도시에서 자란 것보다 훨씬 더 진하다.

교실과 강의실에서 생활하던 일터가 텃밭으로 바뀌었다. 황톳빛 밭엔 아이들 대신 채소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듯, 각 가지 채소에게 정성을 들여 가꾸고, 또 가꾼 것을 나눔을 통해 사랑을 전한다. 그 사랑은 도시의 각박한 생활 속에 활력을 준다.

친구는 한 가지라도 더 주려 이것저것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준다. 씨앗을 뿌려 열매를 거둘 때까지 흘린 많은 땀과 노력이 싱싱한 채소에 보인다. 늘 그곳에 채소를 가꾸면 와서 가져가라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상큼한 흙냄새 속에 싱싱하게 자란 채소들을 신나게 따고 뜯으며 평생을 농사일만 하셨던 부모님을 잠시 생각한다. 그때는 일손이 부족해 나도 여름이 되면 밭에서 풀을 많이 뽑았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유년의 기억.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정이 간다.

하얀 비닐봉지에 담아준 푸성귀를 집으로 가져오니 부자가 된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뜯은 쑥갓과 깻잎을 살짝 데쳐 쌈장에 무친다. 감칠맛이 일품이다. 친구의 사랑이 입안에 가득 담긴다. 정이 가득 담긴 맛난 나물 무침이다. 싱싱하게 자란 풋고추, 윤기 흐르는 연둣빛 담배 상추. 저녁상이 푸짐하다. 황토밭을 식탁으로 옮긴 것 같다.

더해지는 세월의 무게를 이렇게 자연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 몸으로 느끼는 한여름의 순간이었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채소를 뜯던 친구의 텃밭엔 다가올 가을을 기다리는 밀잠자리의 향연이 가득했다. 가끔 뻐꾹새 소리도 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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