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그린 그림(1)
소리로 그린 그림(1)
  •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4.08.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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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원군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흔히들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평소 즐겨 입던 옷이라든가 소품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베레모에 파이프 하면 시인 조병화를 떠올린다.

그러면 빨간 양말에 흰 고무신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운보 김기창 화백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 소리를 잃은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던 운보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2만 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운보는 1914년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청주시 북이면 형동리에 있는 운보의 집은, 1971년 조성을 시작해서 1984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운보가 생활했던 곳이자,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7살 때 장티푸스를 앓아 몇 날을 고열에 시달리다가 회복되었지만, 오랜 고열로 청력을 잃고 후천적으로 농아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어머니의 절망스런 표정과 소리 없는 눈물을 그는 평생 가슴 떨림으로 기억했다고 한다.

그는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수업시간에 우두커니 앉아서 노트에 낙서를 하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일찍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소개해 그림을 배우게 했다. 김은호는 근대기 인물화의 대가로 일찍이 안중식 선생에게 그림을 배우고 뛰어난 솜씨로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린 어진화사였다. 18세에 어린 나이로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했으며 6년 동안 여섯 번의 입선을 하였다.

1942년 운보의 나이 33세에 조선 미술전람회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우향 박래현을 만난다. 장애를 가진 김기창과 결혼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26살 박래현은 그림에 대한 예술적인 교감으로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웠던 두 사람은 병풍을 팔아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행사가 있을 때는 부인의 입 모양을 보고 미리 인사말을 연습해 어눌한 말이지만 직접 인사말을 하는 열의도 보였다. 그런 운보는 아내에게 고향에 씨를 뿌리고 키우기에 알맞도록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서, 훌륭한 열매를 거둬들이자는 뜻에서 우향(雨鄕)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운보의 집을 들어서면 집안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이곳은 운보가 즐겨 앉던 곳으로 멀리 부인의 묘소가 보이는데 높이를 생각하고 짓지 않았을까 싶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는 겨울엔 그 위의 부모님 묘소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정자 옆으로는 370여 년이 되었다는 모과나무가 주인이 떠나고 난 빈집을 지키고 있다. 안채 옆의 큰 바위는 평평하게 생겨서 운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앉아서 좋은 구상을 떠올리기 위해 평소 명상을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그가 기거하던 방에는 한 사진작가가 20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 표정이 어찌나 다양하고 익살스러운지…. 운보가 살던 집을 직접 둘러보며 그의 숨결을 느끼고 흔적을 더듬을 수 있어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가 떠나고 없는 빈집인데도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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