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너머 꿈을 꾸다.
꿈 너머 꿈을 꾸다.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4.07.31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국사 시간에 만난 조선 건국 일등 공신 정도전보다 TV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만난 정도전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내가 국사 수업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8년 전 드라마 속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신하에 불과하였지만, 최근에는 그의 삶이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도전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고종 2년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 11월, 문화관광부에서 정도전을 11월의 문화인물로 지정했다. 그 해는 서울이 수도라 정해진 지 600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인 역적에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사상가이자 기획가이자 경세가(經世家: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사람)로 재조명 받는 정도전. 그의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경복궁에 들어서면 늘 조선왕조를 생각하였다. 근정전 천장에 자리한 칠조룡의 기를 받아 조선왕이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얼마나 더 찬란했을까 아쉬운 그림을 그려보았다. 허나 2012년 박봉규의 ‘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범’을 만난 이후로 경복궁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정도전이 떠올랐다. ‘한 천재의 혁명이 700년의 역사를 뒤바꿔버렸다’는 부제처럼 한 나라를 설계하고 한 나라의 수도를 건설한 만능 재주꾼의 뛰어난 솜씨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박봉규의 책에서는 그의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도서 ‘꿈 너머 꿈을 꾸다’(박남일 지음/서해문집)는 기획가로서의 정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려 말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 정도전이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그가 부단히 준비했던 세월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이루어낸 업적들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가한 가장 잔혹한 행위는 ‘태조실록’이라는 역사 기록을 ‘정도전 역적 만들기’ 대본으로 삼았다는 그의 표현처럼 실록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만난 그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의 업적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이라는 거대 회사를 기획한 삼봉 정도전. 이 걸출한 역사 기획가는 상상을 뛰어넘는 생각의 깊이와 넓은 안목으로 조선 창업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리하여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신권이 중심이 된 새로운 개념의 독특한 왕조국가를 창업했다. 조선은 이전 왕조와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색깔로 창업된 나라였다. 한마디로 조선은 기획력이 빛을 발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 기획 주체는 바로 삼봉 정도전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러한 기획가는 어디에 있는 걸까. 꿈을 현실에 그려 내는 사람이 기획가라면 우리의 꿈을 현실에 그려 줄 기획가는 어디에 있는 걸까. 가치지향적인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현실지향적인 경영자나 정치가를 우리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자신처럼 다방면에 탁월한 재상이 후대에서도 계속 나오리라는 믿음, 더불어 자신만큼 임금과 궁합이 잘 맞는 재상이 늘 존재하리라는 기대. 그를 역사 속에 매장해 버린 못난 후손들이 이제 그를 찾고 있다. 그가 품은 원대한 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하루도 멈추지 않는 우리 한반도에 다시 한 번 희망의 꿈을 꿀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