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7.3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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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눈을 뜨면 습관처럼 틀니를 끼운다. 전보다 씹는 힘이 약해졌지만, 틀니는 내 몸의 일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것은 단단한 음식을 분쇄기처럼 다져줄 뿐 아니라 식감의 즐거움도 느끼게 해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내가 처음 틀니와 마주했을 때가 10년 전, 그때 내 틀니는 치아에 딱 맞게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미세한 틈이 생기면 균형이 틀어지기 마련인데 처음엔 적응이 안 돼 꽤나 불편했다. 입안에 끼운 낯선 이물감이며 잇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신경은 온통 틀니에 가 있었다. 그런 틀니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한마디로 완벽주의자였다. 또 힘으로 치면, 그것은 마치 돌덩이라도 씹어 삼킬 양 덤벼드는 힘센 청년의 모습과도 닮았다. 아마도 그때가 틀니의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였으리라. 하지만 그 틀니도 이제 예전 같지가 않다.

얼마 전 틀니를 교정하였다. 오래 쓰다 보니 틈이 벌어지곤 하는데 간격이 커질수록 틀니는 더 느슨해진다. 때문에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먹을 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씹다 보면 틀니가 빼질 때도 있고, 찌꺼기가 끼면 고통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치과에 가 벌어진 틈을 조여주면 한결 씹기가 편안해진다. 틈이란 게 나에게 참 많은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다.

틀니를 교정하면서 사람 사이에도 틈이 벌어져 관계가 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다. 나는 정에 넘친 나머지 그의 걱정을 덜어주려 위로의 말을 했는데 그것이 친구에겐 마음의 상처가 되었나 보다. 그 때문이었을까. 함께 있을 때 말을 걸어도 응답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누구나 생각의 차이로 인해 틈이 생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만이 벌어진 틈을 좁히는 길이다. 다시 친구에게 손 내밀던 날, 그와 나의 냉랭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 풀렸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정도 더 끈끈해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가슴속에 지닌 말을 허투루 내뱉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틈이 생겼다고 다 불편한 것은 아니리라. 아파트 보도 불록 사이에 핀 노란 민들레꽃, 암벽 틈을 뚫고 나온 어린 소나무, 한 미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그 틈은 비좁고 하찮아 보이지만 인내 속에서 생명을 낳고 생명이 자라는 곳이다. 바라볼수록 애처롭지만, 어머니의 품처럼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리라. 그래서 더 애틋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풍경은 어떤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봄 햇살과 봄바람, 갓난아기 이부자리 틈새로 삐져나온 앙증맞은 아기발가락만 봐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가슴이 따스해지는가.

지금 틀니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힘이 생명이건만 강했던 힘은 소진되었다. 몸통은 누렇게 닳아 있고, 꼿꼿했던 다리는 노인의 관절마냥 구부러졌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내 삶의 동반자로 지금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가까이 밀착되어 온몸을 아낌없이 내던지고 있잖은가. 음식물이 많든 적든 주인을 위한 성정은 변함없으니 낡아가는 틀니가 애틋하고 소중할 뿐이다. 비록 틈이 커질지라도 오래되어 익숙해진 틀니가 나는 좋다.

이제는 내 삶에서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틀니와의 동거는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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