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되는 것들
버려야 되는 것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7.2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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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집 앞에 쌓인 여러 종류의 폐기물 딱지가 붙은 가재도구를 바라보려니 기가 막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책상이며 침대 그리고 우리부부가 쓰던 옷장과 침대마저도 새집으로 이사한다는 명분만으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이제 곧 폐기처분될 물건들이지만 마치 작은 산을 마주한 것 같은 물건더미들을 바라보려니 복잡한 심경이 된다. 아직은 더 사용해도 될 것같은 물건들이 눈에 가시처럼 걸리기도 하고 왠지 내 속살을 밝은 대낮에 드러낸 것 같은 부끄러움에 폐기물딱지를 붙이자마자 발길을 돌렸다. 그동안 참 많이도 부여잡고 살아 왔구나. 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꼭 새집에 새 물건을 들여놔야 하는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소소한 살림살이마저도 남편 손에 의해 마련될 때가 부지기수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 옷장이며 침대 심지어 주방에서 쓰는 밥솥과 냄비마저도 남편 손에 들려 왔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알뜰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물건을 애지중지하며 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익숙한 것이 속편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게을러서 윤기 나게 살림을 할 줄 몰라서였을 것이다. 이사할 집도 그랬다. 집을 사는 일부터 리모델링할 때도 모든 것을 남편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내어 집수리를 마쳤다. 나는 다만 긍정과 부정을 적절하게 섞어 대답만 하는 것으로 내 역할을 마쳤다.

이삿날을 정하고 집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의 시작과 끝은 갈등이었다. 버려야 되는 것들과 이삿짐 속에 챙겨 넣어야 될 것들 사이에서 실속도 없이 마음만 분주했다. 그렇게 며칠을 허비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쓰던 물건들에게 발목 잡혀 온갖 잡동사니 그대로 싸들고 이사 가겠구나 싶었다.

옷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년째 주인의 간택을 받지 못해 접힌 그대로이거나 옷걸이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옷들이 꽤 많았다. 가슴 밑바닥에서는 유행은 돌고 도니까 챙겨두면 입을 수 있다며 미련의 여지를 만들어 손놀림을 느리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만큼은 단호해야 된다고 마음잡기를 수차례, 우여곡절 끝에 정리를 끝냈다. 그렇게 집안곳곳에 박혀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내놓고 보니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이 빠진 그릇들은 왜 못 버리고 지니고 있었는지 아마도 구멍 뚫어 화분으로 쓸 요량이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닳고 닳아 신을 수도 없는 운동화는 유명브랜드라는 허울에 눈이 멀어 아깝다는 이유로 십여 년을 신발장에 모시고 살았다. 그동안 괜한 미련 때문에 부여잡고 살아왔는데 마음한번 바꿔 먹으니 홀가분했다.

문득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이 이 물건들뿐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손을 거쳐 쓰이고 버려졌겠는가.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살아왔음에도 정작 내안에 있는 욕심들과 이기심들은 버리지 못하고 늘 갈등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내 차례다. 산처럼 쌓인 저 물건들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욕심과 이기심들을 버려야 될 때다. 미련 없이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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