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린내 풀
누린내 풀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7.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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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오늘 아침은 누린내풀이 제일 먼저 눈길을 끈다. 이름 그대로 잎을 만지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옆에만 가도 무슨 풀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풀을 뽑다가 이 녀석 곁에 머물면 손이 저절로 움츠러드는데 잘못하여 건드리기라도 하면 숨을 멈추고 얼른 뒤돌아 선다. 꽃술이 신기하고 하도 예뻐서 몇 포기 키우고 있지만 냄새가 지독하여 자꾸 피하게 되는 식물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그래도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풀꽃이다. 봄과 초여름이 가물어서인지 보라색 꽃이 벌써 피었다. 자수정 같은 동그란 꽃망울의 작은 꽃의 모양은 어느 꽃도 흉내 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들깨와 비슷한 모양의 줄기에 잎을 양쪽으로 두 장씩 내고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를 좌우 대칭으로 한 대씩 올린다. 그 끝에 진한 보라색의 꽃을 매단다. 특이하게도 암술과 수술을 하늘 쪽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펼친다. 네 장의 꽃잎을 나비의 날개모양으로 펼치고 한 장은 꽃술이 그리다만 원을 만들기 위하여 둥그렇게 휜다. 꼭 꽃술의 모습이 과거급제 하면 머리에 꽂던 어사화 같다. 꽃술이 길게 밖으로 나온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한 번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누린내의 악취가 진동을 한다. 식물에서 뭐 이런 냄새가 날까.

카메라의 파인더를 들여다보면 중심부에 원이 그려져 있다. 가만히 그 원의 크기에 꽃을 맞추어 보면 정확한 동그라미 형태로 꽃이 피어 있음을 보게 된다. 참으로 묘한 모습에 눈을 떼기가 힘들다. 아름다운 모습에 끌린 벌레들과 지나가는 길손의 얌체 같은 손길을 피하는 방법으로 독한 냄새를 택한 것 같다.

식물들에게도 자신들의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목표가 있나보다.

아래쪽으로 길게 뻗은 꽃잎은 벌과 나비가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여기에 벌이 앉았다. 뭔가를 작업하는 동안 벌의 무게 때문이지 위에 핀 꽃잎이 아래로 향하게 되면서 길게 뻗었던 수술도 끌어내려오니 꽃가루가 벌의 몸에 묻게 되었다. 꽃가루를 묻힌 벌은 또 다른 꽃으로 옮겨가 꽃가루받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지. 어떤 꽃은 원치 않는 곤충을 오지 못하게 악취를 풍겨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지만 누린내 풀은 꽃에서만은 향기를 내뿜어 벌에게는 꿀을 딸 수 있게 하고 다른 동물에게는 악취를 풍겨 접근을 막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꽃이 필 때는 냄새가 더욱 심하여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누린내가 몸에 배 고생할지도 모른다.

풀꽃들의 모습과 향기와 빛깔은 참 각양각색이다. 어떤 풀꽃은 고운 꽃과 향기로 관심을 끌고, 어떤 꽃은 곱지도 안으면서도 곁에 갈 수 없도록 냄새를 피우는 꽃, 누린내 풀처럼 가까이 하고 싶어도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가까이 다가 갈 수 없게 만드는 풀꽃이 있다. 아마도 저항이란 자기방어기제가 아닐는지.

누린내 풀을 보면서 나의 향기는 어땠는지 뒤돌아본다. 남이 보는 나 자신은 과연 어떤 향기를 내뿜고 있었을까. 갑자기 긴장된다.

화려한 보랏빛을 가진 꽃, 꽃술의 정교함과 지독한 향기를 무기처럼 갖고 있는 누린내 풀에게 여전히 벌과 나비는 날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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